세상만사

초점 잃은 병상

말까시 2014. 2. 24. 16:18

 

 

◇ 초점 잃은 병상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가 온통 세상을 뿌옇게 만들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빌딩들은 유령의 도시처럼 높고 낮음이 불분명하다. 외출을 삼가라고 외쳐대지만 먹고사는 일이 어디 실내만 국한되는가. 나다니지 않고서는 삶을 꾸려 나갈 수 없다. 서풍을 타고 밀려오는 미세먼지는 태백산에 걸려 그대로 멈추었다. 태극기도 펄럭이지 않고 늘어져 있다. 바람아 불어다오. 힘차게 불어다오. 하늘을 씻어줄 단비가 내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병원에 입원하여 삼 주째 누워 있는 엄마를 보기위해 시골에 다녀왔다. 안방에서 살짝 넘어져 병원에 갔더니만 바로 입원하라는 의사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별다른 치료는 없고 포도당 주사 매일 맞고 소화제 비슷한 것 매 끼니 먹고 있는 것이 치료의 전부다. 매일 같이 누워 있다 보니 기력이 쇠약해져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뼈에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고 움직이지 말라 하여 대소변을 누워서 해결한다. 퇴원을 종용하자 서두르지 말라는 의사는 좀 더 지켜보자고 한다. X-Ray 사진 상에는 금이 갔는지 확실치 않다고 한다. 타박상을 가지고 과잉진료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퇴원을 하자니 엄마가 불안해 할 것 같아 진퇴양난에 빠졌다.

 

병실은 팔순 노인들이 움직임 없이 누워 있다. TV를 보다가 주무시는 것이 하루일과이다. 청력이 떨어져 잘 들을 수도 없고 말 할 수 있는 기력도 없는 노인들은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가시만 남은 구십 노인은 일가친척도 모르는 듯 물음에 답이 없다. 애처럼 작아진 육신은 가늠하기 조차 힘들어 부측하지 않으면 일어설 수도 없다. 자식은 애타게 불러 보지만 초점 잃은 눈동자는 움직임이 없다. 병실분위기만큼이나 가족들의 근심어린 얼굴은 굳어 있었다.

 

병실은 생기가 하나도 없다. 공기도 탁하고 온도가 높아 보통사람들은 하루저녁 잠자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보호자 없는 병실을 운영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병실마다 간병인 한명이 교대로 수발을 들고 있었다. 간병인은 식사를 도와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소변주머니를 비워준다. 시골병원이라 그런지 간병인도 노인이 대부분이다. 그들과 환자들의 대화는 존칭이 없다. 식사 때마다 달래고 얼러 밥을 뜨지만 몇 숟가락 뜨고는 내려놓는다. 매일같이 누워 생활하다 보니 밥맛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누워 잠자고 때 되면 밥 먹고 약 먹는 일상이 얼마나 지겨울까. 주말에 들리는 가족들 얼굴 보는 것 빼고는 삶의 활력소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고민에 빠졌다. 퇴원 후 거동이 불편하면 시골생활이 쉽지 않다. 답답함을 싫어하는 노인들은 아파트에 사는 것 자체가 감옥살이나 다름이 없다. 시골집에 CCTV와 움직이는 감지 센서가 설치되어 있다. 얼마 전에 정부에서 설치 해주었다. 전화도 버튼하나만 누르면 바로 연결이 된다. 이렇게 좋은 시설을 갖추었어도 기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결국, 머지않아 요양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식 된 도리로서 안 된 일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노인이 되면 군대에 가는 것처럼 자진입소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족회의를 소집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꽃피는 춘삼월이 다가오는데 먼지가 뿌려놓은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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