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우거지상으로 돌변한 주부들

말까시 2014. 1. 27. 14:46

 

 

◇ 설명절이 다가오면서 우거지상으로 돌변한 주부들

 

우리 고유의 명절 설이 다가오고 있다. 선물은 무엇으로 준비를 해야 할까. 용돈은 얼마나 준비를 해야 하나. 시골을 내려가는 타임은 언제로 하면 좋을까. 명절이 다가오면 고민이 이만 전만이 아니다. 전 국민이 움직이다 보니 시골 한번 다녀올라치면 전쟁을 치러야 한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사람구실을 위해 호주머니를 털털 털지 않을 수 없다. 벌써부터 아내의 얼굴이 밝지 않다. 종갓집 며느리도 아닌데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의 주부들에게는 명절이 달갑지 않은 것 같다.

 

“누나에게 선물을 보냈남.” 아내에게 슬며시 물어 보았다. 매년 하던 선물을 하지 않으면 그동안 해왔던 것이 무색해 질 수 있다. “아이참, 깜박 잊었네.” 물어보기 천만 다행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멀리 있는 친척에게 작은 선물이 오고 간다. 부담 없이 주고받는 선물이야말로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 하는 좋은 풍습이다. 선물을 고르기도 참으로 어렵다. 부담을 갖지 않도록 고려도 해야 하고 받아서 실망도 하지 않도록 가격대를 맞추어야 한다. 선물 고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양가를 방문할 때 선물로 먹을 것을 가장 많이 준비한다. 양가 부모님들에게 용돈도 두둑이 드려야 한다. 노인들은 선물보다 현찰을 아주 좋아한다. 시골에서 돈 쓸 일이 없다고 하지만 애경사를 챙기다 보면 곶감 빠지듯 일순간에 바닥난다. 매년 똑 같이 할 순 없다. 일 년에 한번 월급이 올라가듯 용돈도 그만큼 더해주어야 얼굴이 활짝 핀다. 음식 장만도 해야지 오고가는 교통비에 용돈까지 쥐어 주고 나다보면 한 달 월급이 소리 없이 사라지진다. 명절이 두 번이기 망정이지 세 번이었다면 거덜 나기 십상이다.

 

어릴 적 난 세배 돈을 받은 적이 없다. 단 검정고무신과 때때옷을 입을 수 있었다. 돈이 귀한 시절이라 세배 돈을 받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평소 먹어보지 못했던 기름진 음식과 과일, 과자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고마울 따름이다. 과자도 마음껏 먹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제사를 지내고 나면 큰엄마께서 줄을 세워 나누어 주었다. 호주머니에 과자를 담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달고 맛있는 사탕을 물고 동내를 누비곤 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돼지고기를 사 오신다. 읍내에서 사오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으로 돼지를 잡았다. 신문지에 둘둘 말아 사온 돼지고기는 탕을 만들고 살코기를 얇게 펴서 산적을 만들었다. 제사 음식을 만들고도 남아 겨울 내내 조금씩 잘라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설 명절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추석에는 고기를 많이 살 수가 없다. 살강에 매달아 놓은 돼지고기는 영하의 날씨에 얼고 녹음이 반복되면서 부드러워진다. 숙성되어 맛도 일품이다. 신 김치를 넣고 끓이는 찌개는 정말 환상이다. 아무리 맛집이라도 그때 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대한민국 주부들이 우거지상을 하고 있다. 마트에 가보면 안다. 음식을 장만하고 선물을 고르는 모습이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의례히 해야 하는 의무감에 즐거울 리가 있겠는가. 반면 대목을 잡으려고 산더미처럼 싸놓은 마트 곳곳에 한복 입은 아낙이 미소를 짓고 있다. 똑 같은 주부임에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얼굴표정이 180도 다르다. 명절을 보내기 위하여 힘이 들고 지출도 많지만 기왕에 치러야 하는 행사니 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세상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점 잃은 병상  (0) 2014.02.24
아리송해, 사는 게 뭔지?  (0) 2014.02.17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0) 2014.01.23
한눈팔지 마!  (0) 2014.01.15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을까.  (0) 201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