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눈이 내리고 흐린 날이 이어지더니만 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세상을 어둡게 했던 미세먼지가 날아가고 쌓인 눈도 녹아 빌딩들이 높이 솟아 보인다. 선명하게 드러난 피뢰침이 화살처럼 날카롭다. 어디선가 날아든 새들은 나뭇잎사이를 날아다니며 재잘거린다. 지하철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무가지는 무수한 손길에 사라지고 거치대만이 덜렁 서있다. 바쁜 일상 사람들은 뛰고 걸어 어디론가 사라진다.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한다. 들어가는 순간 커다란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 본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입가에는 침 흘린 자국이 선명하다. 윤기가 흘러야 할 얼굴에 푸석푸석 왕모래가 흐르고 눈곱이 잔뜩 끼어 있다. 몰골이 너무나 흉측하여 거울을 깨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샤워부스에 들어가 물세례를 받고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희미하게만 보였던 사물이 또렷하다. 온몸에 비누칠을 하여 기름기를 제거 하고나니 피부가 뽀드득 소리를 낸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비누거품을 바르고 말끔하게 면도를 했다. 180도 바뀐 모습에 대만족을 한다.
안방 화장대위에 커다란 거울이 있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머리는 촉촉이 빛났다. 드라이를 하여 각을 잡고 젤로 마무리를 하여 흘러내림을 잡았다. 당기는 얼굴에 스킨을 바르고 로션을 덧칠하여 수분을 스며들게 했다. 아내가 쓰는 영양크림을 찍어 볼에 발라 문지르고 나니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홈쇼핑에서 구입한 CC크림을 발라보았다. 검은 점들이 사라지고 하얗게 들어난 살결은 주름하나 없이 매끈하다. 흡족한 표정은 거실에 나와서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때 아내가 한마디 한다. “오늘 또 늦게 들어오게 생겼군.”
신발장 맞은편에 큰 거울이 있다. 신발을 신고난 후 거울을 보지 않을 수 없다. 화장대에서 본 모습은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다. 회심의 미소를 짓고 힘차게 집을 나선다.
승강기 안에는 좌우 뒤에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머무르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거울을 보느라 바쁘다. 고개를 돌려 측면을 보고 머리를 만져 고치고 옷깃을 세워보기도 한다. 남자들은 한두 번 쳐다보지만 여인들은 미스코리아가 된 것처럼 생쇼를 한다. 머리를 만지는 것은 기본이고 그 짧은 시간에 눈 화장을 고치기까지 한다.
거울은 곳곳에 있다. 상가출입문이 유리로 된 곳이 많다. 그곳에 비추어 보아도 선명 하지는 않지만 윤곽을 대충 볼 수가 있다. 잽싸게 한 바퀴 돌아보면 전신을 채크할 수 있다. 순간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다.
지하철벽면에 아주 큰 거울이 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보인다. 옷매무새가 맘에 들지 않는 듯 한참을 들여다본다. 지체할 수가 없다. 뜀박질 하여 지하철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뒤에 손거울을 꺼내 본격적으로 화장을 뜯어고친다. 아직 덜 마른 머리도 손으로 털어 말린다. 미처 긋지 못한 눈썹에 포인트를 주고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살리고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짓는다. 사무실책상에도 거울이 있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거울을 보며 화면을 고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떠한가. 가치상승을 위한 화장은 남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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