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라면 사랑에 푹 빠진 우리가족

말까시 2014. 1. 8. 10:49

 

 

◇ 라면 사랑에 푹 빠진 우리가족

 

산과 들이 회색빛으로 탈바꿈되어 삭막하다. 벽을 타고 오른 담쟁이도 잎을 다 버리고 줄기만이 바싹 말라붙어 있다. 갈대꽃은 솜털처럼 부풀어 올라 바람에 날리고 억새꽃은 잘려나가 줄기만이 뾰족하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는 생기 잃은 솔잎을 털고 새잎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성했던 잎들이 떨어지고 난 산은 골까지 다 보인다. 새들이 날고 길고양이 모습도 선명하다. 나무는 훌훌 털어 버리고 매서운 칼바람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다.

 

주말에는 두 끼를 먹는다. 늦잠을 자는 아내는 보통 10시가 되어야 일어난다. 그 전에 일어난 나는 라면을 끓여 먹는다. 전날 술이라도 한잔 했다면 얼큰한 국물이 생각나 라면을 먹지 않고는 못 배긴다. 기름에 튀긴 면발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지만 국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즐겨먹는다. 불량식품이라 강조하지만 아이들도 좀처럼 끊을 수 없는 것 같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다.

 

소싯적 라면은 귀한 존재로 통째로 끓여 먹을 수가 없었다. 큰 솥에 국수와 라면을 넣고 호박도 함께 넣어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이다. 식구는 많고 라면은 귀한존재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수라면에 김치를 송송 썰어 넣으면 라면 수프와 김치의 새콤함이 함께 어우러져 시원함이 두 배가 된다. 꼬들꼬들한 면발을 서로 가져가려고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라면 맛에 푹 빠져 생 라면을 몰래 먹기도 했다. 소싯적 즐겨 먹었던 ○○회사라면이 지금도 잘 팔리고 있다.

 

요즈음 마트에 가보면 라면의 종류가 무수히 많다. 봉지에 그려진 라면 그림을 볼 때마다 다 먹고 싶다. 컵라면도 가끔 먹는다. 역시 라면 맛의 진수를 느끼려면 봉지라면이 최고다. 난 辛자가 그려진 라면을 즐겨먹는다. 국물이 얼큰하고 시원하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때 닭 국물을 우려내어 청양고추로 매움을 더한 라면이 인기를 끈 적도 있었다. 하지만 탱글탱글한 면발을 따라 올수가 없다. 식탁 위 선반에는 컵라면과 봉지라면이 늘 거기에 있다. 아이들과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다 놓는다. 아내는 손수 끓여 주지는 않는다. 자기 취향대로 끓여 먹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수프를 넣고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대파를 가늘게 썰어 물에 넣고 비벼대면 쫄깃해진다. 표고버섯도 물에 불려 채 썰어 놓는다. 마늘은 칼등으로 눌러 으깨놓고 냉장고에 보관된 톳을 토막 내 준비한다. 물이 팔팔 끓어 김을 내뿜을 때 면과 톳, 표고버섯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잠시 후 국물이 끓어오르면 준비된 마믈과 대파를 넣고 센 불로 짧게 끓여낸다. 맑은 국물을 위해 계란은 풀지 않는다. 수프만 넣어도 맛있지만 몇 가지 첨가한 부재료로 인하여 국물 맛은 한층 더 깊이를 더한다. 오도독 씹히는 톳은 건강식으로도 으뜸이다. 이렇게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속이 개운하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해장이 된다.

 

“라면을 먹고 그대로 나두면 어쩌란 말이야” 기름 범벅이 된 그릇이 싱크대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곤 아내가 한마디 한다. 아이들은 설거지를 할 줄 모른다. 기름기 있는 그릇은 바로 세척을 해야 하는데 늘 잔소리를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나 역시 설거지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집안에서 위상이 하늘을 찌르는 아내는 온갖 잔소리로 기를 죽인다. 집안일 혼자 다하는 것처럼 호령을 하는 아내는 내가 끓여 달라고 하면 도끼눈을 뜨고 달려든다. 아내는 우리 집 왕이로소이다. 아내의 잔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라면사랑에 푹 빠진 우리가족은 주말이오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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