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으로 쇼핑간 마눌
오늘이 소설인데 하늘은 맑고 바람 한 점 없다. 낙엽은 살짝만 밟아도 바사삭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가로수 옆에는 낙엽을 수북이 담아 논 마대자루가 군데군데 있다. 일부 퇴비로 생산되는 것 말고는 소각되어진다고 한다. 억새도 갈대도 베어지고 있다. 황망한 하천가에 새들이 머물러 있을 곳이 없다. 준설을 하여 모래가 잔뜩 쌓여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은 어떻게 되었을까. 중장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땅이 뒤집혀 볼썽사납다. 둔치, 이 추위에도 노인들은 새벽운동에 여념이 없다.
먼동이 틀려면 아직 멀었다. 어둠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아내는 깊은 잠을 못 이루는 것 같았다. 덩달아 잠에서 깬 나도 자세를 고쳐야 했다. 새벽 다섯 시도 되지 않아 일어난 아내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큰 가방에 옷도 집어넣고 세면도구를 비롯하여 화장품까지 챙기고 있는 아내의 얼굴은 비장해 보였다. 군인이 전투를 나가기 위해 군장을 꾸리는 것처럼 민첩했다. 미리 많은 것을 생각한 것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는 옷과 물건들은 가지런했다.
얼마 전 아내는 홍콩을 간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여성상위시대에 무어라 하겠는가. 무언의 허락을 하고 말았다. 부부사이 신체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권한은 이미 없어지고 만 것이다. 만수무강하게 잘 다녀오면 그것이 기쁨이요 가정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홍콩을 간다는 말에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중에 혹여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가.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부부지간이라도 말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다. 제아무리 좋은 자리가 있다 해도 어두운 밤에는 꼭 집에 와서 할 일 다 하고 잤다. 비자, 여권 없이도 홍콩을 들락날락 무수히 보내주었다고 자만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필 해외여행을 홍콩으로 정했을까. 환락의 도시라고 하는 홍콩은 여자들보나 남자들이 즐겨 가는 곳이 아닌가. 그동안 여권 없이 다녀온 홍콩이 별로였던 말인가. 생각은 생각을 만들고 골치는 두통으로 변해 현기증이 났다. 지금쯤 홍콩의 거리를 활개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심통이 난다.
“자기야! 애들하고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는 반드시 버려야 해, 오래두면 냄새가 나니까. 세탁기 돌려놨으니까 이따가 툴툴 털어 널어주고, 애들 일어나는 데로 계란말이 해놓았으니까 밥도 챙겨주고, 아참 조심할 것이 있어, 나없다고 바싹 마른 고추 옥상에다 널어놓았다간 죽을 줄 알아”
“네 알겠습니다. 지퍼 없는 털 가방이나 도난당하지 않도록 조심하구려.”
아직 밖은 어둑어둑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지도 않은 아내는 싱글벙글 현관문을 열고 사라졌다. 오늘밤부터 홀로 자야 한다. 손이 시려도 넣을 곳이 없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겠지만 아내의 온기는 매트가 대신 할 수 없다. 이 외로움을 어떻게 달랠까. 바싹 마른 고추는 발이 없어 움직일 수 없겠지만, 꾸물꾸물 기어들어오는 홍합을 물리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중삼중으로 감정을 옭아매어 아내의 명령을 반드시 지키고 말 것이다. 불금!!!! 벌써 가슴이 타들어가는 구나.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