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김장 하던 날

말까시 2013. 12. 17. 10:59

 

 

◇ 김장하던 날

 

 

버무림 

포장 


 

길은 눈이 없지만 고수부지는 빙판이다. 눈이 다져져 자전거를 탈수 없다. 빙판길을 달리다 넘어지면 바로 사망이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현격하게 줄었다. 영하의 날씨에 아랫목에서 벗어나길 꺼려하는 것 같다. 호호 불어 나온 온기는 일순간에 사라진다. 처마에 고드름도 보인다. 눈 덮인 들판에는 짐승발자국이 무수히 많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맨 듯 어지럽게 나있다. 발자국은 하수구로 향해 있었다. 하수의 온기가 짐승들의 보금자리가 된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겨울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김장하는 것을 지켜만 보다가 참여하게 되었다. 여름에 씨를 뿌려 자란 배추가 탐스럽게 알이 꽉 찼을 때 수확하여 소금에 절인다. 하루정도 지나 세척하여 채반에 얹어 물을 뺀다. 숨죽은 배추는 부피가 반으로 줄어들어 축 늘어졌다. 하나 쭉 찢어 맛을 보니 짠 맛이 강했다. 간수가 덜 빠진 듯 씁쓸함이 배어 나왔다. 매섭게 부는 바람은 배추 잎에 남아 있는 수분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배추는 김치가 되기 위해 수분을 완전히 버리고 고춧가루 세례 받을 준비가 되었다.

 

고무다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저었다. 워낙 많은 양념이 들어가는 바람에 손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동 프로펠러를 이용해 섞어주니 쉽게 버무려 졌다. 동네 할머니 두 분이 오셨다. 여러 명이 달라붙어 버무렸어도 김장을 마치기까지 한나절은 족히 걸렸다. 배추김치를 비롯하여 총각김치와 갓김치를 다 버무리고 나니 배가 고팠다. 비닐에 싸고 박스에 넣어 택배상자를 만드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박스에 주소까지 적어 놓고서야 김장을 마칠 수가 있었다.

 

 

보쌈 

트렁크에 가득 담겨진 먹거리 


 

아침부터 삶기 시작한 돼지고기는 흐물흐물 잘 익어 있었다. 된장을 풀어서 인지 구수함이 집안 가득했다. 소쿠리에 돼지고기를 건져내어 김을 날려 보냈다. 온기가 나간 보쌈은 썰기 좋게 굳어있었다. 칼을 갈아 날을 세웠다. 가장 얇게 썰어 냈다. 접시에 담아내니 침이 절로 나왔다. 보쌈에 김치를 싸서 입에 넣었다. 꿀맛이었다. 일하고 먹는 보쌈은 도심 속에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술을 할 수 있는 가족이 없어 혼자 막걸리 한통을 다 비웠다. 공기 좋은 곳에서의 기분 좋은 음주는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차 트렁크에 김치 종류별로 차곡차곡 실었다. 종아리만큼이나 커다란 무도 고구마와 함께 마대자루에 담았다. 생으로 먹어도 맛있는 순무도 있었다. 설탕에 버무린 유자차도 두병이나 보였다. 감나무에 매달아 바싹 마른 무청도 트렁크 구석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김치 담느라 정신이 없어 구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노친 생굴은 바퀴 옆에 기대고 있었다. 트렁크로 직행했다. 이것저것 싫다보니 빈틈 하나 없었다. 차 뒤꽁무니가 땅을 닿을 듯 주저앉아 있었다.

 

새벽에 모두 잠든 사이 아침밥을 먹고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고속도로는 아우토반이었다. 막힘없이 달린 달구지는 점심때가 되어 도착을 알렸다. 장시간 운전을 해서인지 피곤이 밀려 왔다. 아내는 내내 잠을 잤어도 어깨근육이 풀리지 않아 피곤함을 호소했다. 두 손을 어깨에 올리고 주물렀다. 아내는 시원한지 으흐!!~~♬아아!!~~여성 특유의 괴성을 질렀다. “성감대가 어깨로 올라 왔나 징그럽게 뭔소리여.” 오랜만에 들어보는 신음소리에 나도 몰래 힘을 주었다. 아내는 손을 뿌리치며 “아야!, 뭐 제대로 하는 게 없어” 하고는 내 품에서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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