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은 대중교통으로
하늘이 열렸다. 이삼일 스모그로 인하여 하늘인지 땅인지가 분간이 가지 않았었는데 해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다. 산마루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아파트이름도 선명하게 보인다. 맑은 날이 이렇게 좋은데 요 며칠 암흑에서 살았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모처럼 맑은 날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나니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공기가 좋지 않은 새벽 자전거를 타려면 눈도 따갑고 콧물도 나온다.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 누구나 다 안다. 며칠 전부터 아내의 신신당부가 있었다. 무시하고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어둠속을 달리다 보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의 애마 자전거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퇴근을 했다. 당연히 오늘아침도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환승하여 편안하게 출근을 했다. 드라이로 각 잡은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 좋았다. 코도 흐르지 않고 목안도 개운했다.
쇠 소리를 내며 전동차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계단을 마구 뛰어 내려왔다. 넘어지면 큰일 날 것이 뻔한 일이지만 너도나도 뜀박질이었다. 다가오는 전동차를 놓치면 다음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겨우 2,3분이다. 목숨 걸고 뛰지 않아도 된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격이다. 남이 장에 가니 두엄지고 따라간다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다. 숨을 헉헉거리고 들어선 뭇사람들은 빈자리가 있는지 눈알을 빠르게 돌린다. 없다. 빈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손잡이에 한손을 올리고 시선 둘 곳을 찾지만 마땅치 않다. 덜커덩 전동차는 기우뚱하면서 출발한다.
젊은 처자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폭발하면 무수히 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폭탄을 피해 무뚝뚝한 남성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앞뒤좌우에 폭탄이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창가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앞 옆에 젊은 처자가 앉아 있었다. 거울을 꺼내 얼굴을 보더니만 다른 한손에 이상한 것을 들고 눈썹을 다듬고 있었다. 붙이려 하는 것과 떨어지려는 것이 반복되다보니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입을 벌리고 눈 화장을 하는 처자는 선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였다. 아이라인을 그은 다음 마스카라를 발라 속눈썹을 하늘로 치켜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미인으로 변한 처자는 세필로 눈썹을 그렸다. 흐리멍덩했던 얼굴에 윤곽이 뚜렷해지면서 변신을 거듭했다. 볼수록 변해가는 처자에 홀딱 반해버렸다. 화장기법에 따라 180도로 바뀌는 여인들의 얼굴은 캔버스나 다름없다. 쉼 없이 화장에 열을 올리는 처자에 홀려 하마타면 한정거장 더 갈 뻔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와보니 날이 밝아 있었다. 그렇게 많던 스모그도 사라지고 하늘은 파랗고 건물은 선명했다. 버스가 다가왔다. 역시 사람들은 먼저 타고자 뛰었다. “환승입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기계음 반가웠다. 노약자석, 임산부석 빼고 일반인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은 뒷좌석뿐이었다. 마침 빈자리가 보였다. 편안하게 앉아 주위를 살폈다. 정거장마다 타고 내리는 손님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지하철 안보다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눈요기 하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지하철에 보이지 않았던 학생들이 버스 안에는 많았다. 학생들이 조잘대는 소리는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계속하여 입을 다물지 않았다. 자전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볼거리는 넘쳐났다. 모처럼 호강한 눈동자가 초롱초롱, 업무능률이 급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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