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추억의 별미 겨울음식

말까시 2012. 12. 26. 17:19

 

 

◇ 추억의 별미 겨울음식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엄동설한에 밖에서 세수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달라붙는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수건이 채 마르기도 전에 얼어붙어 곤란을 겪기도 했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냉기는 윗목에 있는 걸레를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오늘 기온이 영하 14.5도라 한다. 물기가 있는 곳이면 순식간에 얼음으로 바꾸어 버리는 매서운 추위가 갈 길 바쁜 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메고 있다.

 

이렇게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아버지가 돼지고기를 사다가 부엌찬장에 매달아 놓는다. 여름엔 냉장고가 없어 고기를 많이 사올 수가 없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곳에 매달아 놓은 돼지고기는 얼었다 녹으면서 수분이 조금씩 달아나고 숙성되어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진다. 조금씩 잘라서 김치찌개를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이다. 돼지고기의 살점을 맛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살살 녹아내리는 살코기의 구수함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은 아직도 뇌리에 스쳐 남아 있다.

 

눈이 내리면 새들이 먹을 것을 찾아 사람이 사는 집 근처로 날아온다. 특히 볏짚을 쌓아 놓은 곳에 집중적으로 내려 앉아 벼이삭을 쪼아 먹곤 했었다. 단백질을 보충할 절호의 기회다. 새들이 모이는 곳에 덫을 놓으면 새를 잡을 수가 있다. 덫에 걸리는 새는 한두 마리가 고작이다. 투명그물을 설치해놓으면 많은 수의 새들을 잡을 수가 있다. 주로 걸리는 새는 아주 작은 참새다.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기 때문에 울타리 길목에 설치해놓으면 우수수 걸려들었다. 모닥불을 피워 구워먹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소했다.

 

삽과 주전자를 들고 얼음이 꽝꽝 얼어붙은 논바닥으로 달려간다. 논둑이 있는 가장자리 물고에는 얼음이 약하다. 삽으로 내리쳐 얼음을 깨고 흙을 뒤집어 얼음위에 놓고 샅샅이 뒤지면 뱃가죽이 누런 미꾸라지가 꿈틀 모습을 드러낸다. 워낙 추워서 움직임이 둔하다. 주전자에 주워 담기만 하면 그만이다. 농약을 치지 않아 논에는 미꾸라지가 많았다. 아버지는 미꾸라지를 엄청 좋아하여 잡아다 주면 용돈도 주곤 했었다.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 비빈다음 세척하여 고추장을 풀고 마늘을 넣어 끓이면 겨울철의 별미 추어탕이 탄생하게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그릇 먹고 나면 맨발로 뛰어다녀도 추위를 몰랐다.

 

겨울이 되면 생선장사가 시골까지 왔다. 동태가 주류를 이루었고 가끔 물오징어도 있었다. 팔뚝보다 더 굵은 동태 한 마리면 온가족이 둘러 앉아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굵은 동태를 볼 수 없지만 소싯적 동태는 엄청나게 굵었다. 라면 빨처럼 탱글탱글한 내장은 별미 중에 별미로 형제들 간에 쟁탈전이 벌어졌다. 큼직한 머리는 아버지의 독차지였다.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시원한 국물까지 비워버리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위에 열거한 고기들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을 고른다면 돼지고기를 가장 으뜸으로 치고 싶다. 어렸을 적에 무엇이든 맛이 없겠냐마는 겨울찬바람에 노출되어 숙성된 돼지고기로 끓인 김치찌개의 감칠맛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참새고기도 고소함이 넘쳐나지만 워낙 살점이 적어 만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세월이 변해 먹을 것이 풍부하여 맛깔스런 음식이 많고 많지만 그때 그 시절에 맛보았던 자연의 맛은 다시 맛 볼 수 없는 위대함의 결정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