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추석날 아침 울어야 했던 막내

말까시 2012. 9. 28. 13:27

 

 

◇ 추석날 아침 울어야 했던 막내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이 코앞에 다가왔다. 마음이 들떠 있다. 사무실에도 빈자리가 보인다. 벌써 귀성길에 오른 사람들의 소식이 인터넷에 올라와 눈길을 끌고 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고향 가는 길은 마냥 즐겁다. 부모, 형제, 친구들을 볼 수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유년시절 뛰놀던 산과 들도 어떻게 변했을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풀숲이 무성하여 오솔길은 다 없어졌을 것이다. 나무, 돌 하나하나에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고향산천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영상이다.

 

추석날 아침 울었다. 즐거워야 할 명절 아침 아들이 눈물을 빼고 있으니 엄마 또한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일 년에 두 번 새 옷과 새신을 신는 날이 추석과 설날이다. 대목장날 엄마는 때때옷과 검정고무신을 사왔다. 추석날 아니면 절대 입어서는 안 된다 하면서 장롱 깊숙이 넣어 자물통을 채웠다. 한번만 입어보자 했지만 용납하지 않았다. 장롱 앞에서 맴돌며 상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추석날만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때 그 시절은 왜 그리 하루가 멀게만 느껴졌는지 기다림에 지쳐 하소연도 했었다.

 

농경사회는 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쌀이나 곡식을 내다 파는 방법 외엔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육체노동으로 얻어진 질 좋은 곡식은 돈을 만들기 위해 먹을 수가 없었다. 한두 집 부자를 빼고는 누구나 먹고 사는 일에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굶어야 했다. 과자는 구경도 못했다. 고물을 주어다가 엿 바꿔 먹는 것이 유일한 달콤함이었다. 산과 들에 뛰어 다니면서 산딸기 밤, 잣 등 열매를 따거나 칡뿌리를 캐먹은 것이 주전부리의 전부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추석빔은 귀하고 귀한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

 

난 막내다. 귀여움도 받았지만 설움도 많았다. 형은 새 옷을 입었지만 난 항상 헌 옷을 입어야 했다. 형 옷은 누더기가 다 된 옷도 버리지 않고 내가 자라기만 기다렸다가 여지없이 내 몸에 걸쳐졌다. 물질이 귀했던 시절에 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기워 입고 꿰매 입고 더 이상 입을 수 없도록 해지면 모았다가 이불을 만들었다. 바닥이 다 달아 더 이상 신지 못하는 고무신은 비누와 바꾸었다. 망자의 옷과 소품을 빼고는 모든 것이 재활용되고 돈이 되었다. 그 당시 엄마들은 재활용에 귀재였다.

 

바짓가랑이는 너무 길어 방바닥에 끌리었다. 팔소매 역시 손을 덮고도 남아 흔들거렸다. 고무신은 너무 커서 헐렁했다. 이대로 밖에 나갔다가는 놀림 받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추석날 헌옷을 입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는 바늘과 실을 꺼내어 불이 낳게 긴소매와 바지를 줄였다. 고무신은 어쩔 수 없어 그냥 신어야 했다. 엄마는 자식의 신체치수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막내는 더 이상 물려줄 동생이 없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입히기 위해서는 넉넉한 옷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코흘리개 막내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사왔다고 서러워 눈물을 흘리며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그 엄마가 늙고 늙어 위태로운 삶을 홀로 이어가고 있다. 가까이 모시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이제 엄마가 나에게 투정을 부린다. 힘이 없고 사는 재미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빨리 달려가 투정을 받아주어야 할 것인데 어릴 적 추석처럼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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