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반짝이는 여름날 밤 풀벌레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습니다. 고개 들어 보는 것보다 멍석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은 각양각색의 띠를 이룬 별들의 향연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지요. 별똥이 떨어질 때면 두 손 모아 소원도 빌어보곤 했습니다.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이슬이 내려 옷이 축축해지죠. 방으로 들어가 자야할 시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길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도랑이 있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늘 다니던 길이기에 머리에 저장된 감각을 더듬어 움직일 뿐입니다. 남포등으로 길을 밝혀 갈수 있는 사람은 부잣집 아니고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급하지 않으면 화장실 가는 것도 자제해야 했지요. 소변은 요강으로 해결했습니다. 아마도 밤마실은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다닌 것 같습니다.
“일찍자그라”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방과 윗방사이에 구멍을 뚫어 얹어 놓은 호롱불은 불꽃을 감추었습니다. 석유기름이 무척이나 비싼 시대에 장시간 불을 밝히는 것은 낭비지요. 저녁밥 먹고 나면 바로 불을 꺼야 했습니다. 어둑컹컴한 방안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하다가 잠들면 그것으로 밤의 역사는 끝나지요. 여러 형제가 한방에 누워 자다보면 다리가 엉키어 싸우다가 엄마한테 혼나곤 했지요. 삼배로 만든 기저귀에서 나온 오줌이 흘러나와 자다 말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유년시절 어느 여름날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마당에 나와 별을 보고 옥수수를 따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초롱초롱한 별은 금방이라도 마당에 쏟아져 내릴 것 같이 무수히 빛나고 있었죠. 쌀이 귀하던 시절 감자 고구마 옥수수 이것들은 주린 배를 채워주는 소중한 먹거리였습니다. 탱글탱글 누렇게 익어버린 옥수수는 정말 고소하니 맛있었습니다. 한소쿠리 담아 먹기 시작한 옥수수는 금방 동이 났습니다. “밤이 늦었다 얼른 들어와 자그라.”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방으로 들어와 엄마 품에 파고들어 잠이 들었습니다.
“똥겼냐” 엄마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듬더듬 마루를 지나 뜨락으로 내려와 뒷동산으로 무작정 달려갔습니다. 똥꼬를 빠져 나온 오물은 허벅지를 타고 줄줄 새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처치를 해야 감쪽같이 감출수가 있을까.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마가 할 수 있는 것은 풀을 뜯어 닦아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우물을 찾아 가려면 산을 내려와 한참을 걸어야 했습니다. 우물을 가보아도 두레박이 없으면 도루아미 타불이지요. 허벅지에 흐른 오물은 풀로 닦아 냈지만 옷 사이로 스며든 것은 제거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저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매섭게 들려왔습니다.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돋더군요. 엄마는 뒷간에 간 것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혼쭐이 날까. 갑자기 겁이 덜컹 났습니다. 하늘에 별들도 깊은 밤이라 그런지 졸고 있는 듯 희미했습니다. 불쑥 찾아온 불청객에 놀란 풀벌레도 꼭꼭 숨어버렸나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풀숲은 이슬이 내려 축축했습니다. 한동안 적막감이 흘렀죠.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상태로 집으로 갈수는 없었습니다. 어린마음에는 불안감만이 엄습해 올뿐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애라 모르겠다. 날이 새기를 바라며 누워버렸습니다.
“용식아! 어디서 무하냐.”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작 놀라 일어나 가만히 들어보니 엄마였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일을 어쩌나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물을 뒤집어 쓴 모습을 보면 얼마나 놀랄까. 저녁밥 먹고 고이자다가 나간 아들이 보이지 않으니 난리가 난 것입니다. 온가족이 찾아 나서 부르는 소리에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닭들이 놀라 퍼덕거렸습니다. ‘난 죽었다.’물이 있으면 뛰어들고 싶은 심정으로 가슴이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했습니다. 풀숲에 모습을 감추고 숨을 죽이고 납작 엎드렸습니다.
냄새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 가족의 코를 자극했나봅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서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벌떡 일어나 잘못했다고 빌어볼까도 했습니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여름밤이었지만 기력이 떨어진 상태로 장시간 풀숲에 엎드려 있으니 오한이 밀려 왔습니다. 공포의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뭐하냐.”나는 발각되자마자 죄인처럼 벌벌 떨고 말았습니다. 사건의 진위를 바로 눈치 챈 엄마는 측은해 보였는지“이 밤중에 어린 것이 산속에서 혼자 해결하느라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하면서 혀를 찾습니다. 엄마의 손에 이끌리어 우물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피해서 얼굴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옥수수를 너무나 많이 먹어 배탈이 난 것이었죠. 지금 생각하니 아무 일도 아닌 생리적 현상인데 그 당시는 왜 이리 무섭고 겁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번도 옷에 실례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한여름 밤의 추억은 온가족의 머리에 저장되어 별처럼 빛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무척이나 흘렀건만 아직도 가족모임이 있을 때면‘똥싸배기’라고 하면서 놀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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