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책
교실 뒤편에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 들이다 보면서 킥킥거린다. 호기심에 찬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자리다툼이 치열했다. 선데이 서울 표지모델로 나온 연예인보다도 더 아리따운 외국여인의 전라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사춘기,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야릇한 사진 한 장은 아이들의 가슴을 마구 뛰게 하고도 남았다.
조금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당기고 하다 보니 그림은 찢어지고 만다. 한 조각이라도 얻어 책갈피에 끼워 넣고 몰래 보고 싶은 것이 사춘기의 가슴 뛰는 생각이다. 들어 내놓고 마음대로 보기 어려운 것이 여성을 위한 각종 잡지책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깊숙이 감추어 놓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몰래보곤 했었다.
어느 날 빨간책이 몰래 교실에 돌아다녔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입술이 마르면서 목이 탔다. 와우! 탄성을 자아내며 아이들은 눈을 마주쳤다. 부끄러움을 가득 담은 눈동자는 충혈 되어 붉어졌다.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음란물을 소지하고 있다가 선생님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겁 많은 애들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가지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신축력이 뛰어난 흰색풍선을 쉬는 시간에 가지고 노는 친구가 있었다. 아무리 불어도 잘 터지지 않고 심지어 물을 가득 채워 흔들어도 축축 늘어질 뿐 전혀 변형이 없다. 평소 보지도 못했던 신통방통한 물건을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증이 더해갔다. 문방구에서 팔고 있는 풍선은 절대 아니다. 일반 풍선과 비교 할 수 없는 매력덩어리의 물건은 산아제한용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로 그것이었다. 어른들의 관리소홀로 아이들 수중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풍선인줄 알고 입에 물고 불다가 물을 넣어 출렁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아주 단짝인 친구가 요상한 물건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줄 아느냐고 묻는다. 하얀 대롱에서 빠져 나온 것은 누에고치처럼 희고 부드러웠다. 친구는 물에 담가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슬그머니 귀에 대고 설명해주었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소지품검사를 한다고 하면서 전원 앞으로 나오라 했다. 담배, 불온서적을 적발하기 위해서 가끔 소지품 검사를 했었다. 선생님이 다가와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까 보았던 물건이 선생님 손에 들려 나왔다. 친구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선생님은 의아한 듯 갸우뚱 하더니 물어보지 않고 가방에다 다시 집어넣었다.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쉰 친구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무안해 할까봐 모르는 척 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매형이 약국을 하는 친구는 평소 의료용품을 많이 가지고 다녔었다.
“야 인마! 너 야동 본적 있냐.”
아들놈은 얼굴색이 변하며 눈동자를 돌려 버린다. 이미 전과자임이 틀림없다.
“아빤 별걸 다물어봐, 요즈음 그런 것 안본 애들이 어디 있어.”
민망한 듯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하고 닫아 버린다.
세상이 변했다.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성인용품 그리고 음란물에 노출된 요즈음아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대화의 내용이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온통 머릿속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생각들로 인하여 학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탈선의 길로 빠져 들 수도 있다. 통제를 한다고 해서 고쳐질 일이 아닌 것 같다. 아이들 가슴속에 잔뜩 쌓인 性에 대한 호기심을 속 시원히 풀어 줄 수 있는 좋은 방책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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