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여름 밤의 추억
반딧불이 반짝이는 풀숲에 풀벌레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 빛났다. 고개 들어 보는 것보다 멍석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은 각양각색의 띠를 이룬 별들의 향연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별똥이 떨어질 때면 두 손 모아 소원도 빌어보곤 했었다.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이슬이 내려 축축해진다. 방으로 들어가 자야할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길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도랑이 있어도 모른다. 단지 빛이 있을 때 저장된 감각으로 움직일 뿐이다. 휴대용 호롱불로 길을 밝혀 갈수 있는 사람은 부잣집 아니고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급하지 않으면 화장실 가는 것도 자제했다. 소변은 요강으로 해결했다. 밤마실은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다닌 것 같다.
“일찍자그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방과 윗방사이에 있는 호롱불은 불꽃을 감추었다. 석유기름이 무척이나 비싼 시대에 장시간 불을 밝히는 것은 낭비다. 저녁밥 먹고 나면 바로 불을 꺼야 했다. 도란도란 얘기하다가 슬그머니 잠들면 그것으로 밤의 역사는 끝난다. 여러 형제가 한방에 누워 자다보면 다리가 엉키어 싸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삼배로 만든 기저귀에서 나온 오줌이 한강이 되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똥겼냐” 엄마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듬더듬 마루를 지나 뜨락으로 나와 뒷동산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똥꼬를 빠져 나온 오물은 허벅지를 타고 줄줄 새고 있었다. 어떻게 처치를 해야 감쪽같이 감출수가 있을까.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마가 할 수 있는 것은 풀을 뜯어 닦아내는 것이 전부이다. 우물을 찾아 가려면 산을 내려와 한참을 걸어야 했다. 우물을 가보아도 두레박이 없으면 도루아미 타불이다. 허벅지에 흐른 오물은 풀로 닦아 냈지만 옷 사이로 스며든 것은 제거할 방도가 없었다. 저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매섭게 들려왔다.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엄마는 뒷간에 간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혼날까. 갑자기 겁이 덜컹 났다. 하늘은 별이 총총히 박혀 빛나고 있었다. 불쑥 찾아온 불청객에 요란하게 울어대던 풀벌레도 꼭꼭 숨어버렸다. 적막감이 흘렀다. 풀숲에 주저앉아 날이 새기를 바랐다.
저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이일을 어쩌나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물을 뒤집어 쓴 모습을 보면 얼마나 놀랄까. 풀숲에 모습을 감추고 납작 엎드렸다. 저녁밥 먹고 자다가 나간 아들이 보이지 않으니 난리가 난 것이다. 아버지, 엄마, 형님, 누나 온가족이 찾아 나서 나를 부르는 바람에 적막감이 깨지고 닭들이 놀라 퍼덕거렸다.
냄새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 가족의 코를 자극하고 말았다. 바로 발각되어 죄인처럼 발발 떨었다. 엄마의 손에 이끌리어 우물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번도 옷에 실례를 한 적이 없다. 한여름 밤의 추억은 온가족의 머리에 저장되어 별처럼 빛나고 있다. 세월이 무척이나 흘렀건만 아직도 가족모임이 있을 때면 가끔 놀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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