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윽한 향이 물신 풍기는 봄나물
그늘진 담벼락에 쌓인 눈은 얼음이 되어 그대로다. 먼지와 뒤범벅이 된 얼음은 시멘트와 다를 바 가 없다. 해가 들지 않는 산길에 숨어있는 얼음은 넋 놓고 지나가는 아낙네를 자빠트려 꼼짝 못하게 한다. 엉덩이가 아플 것인데 아야 소리 감추느라 인상을 찌푸린 채 원망의 눈초리가 매섭다. 봄기운에 녹아내린 물은 골마다 차갑게 흐른다. 맑고 투명하기가 유리알 같다. 양말을 벗고 들어가 첨벙 물장구 치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남쪽들녘에 봄이 온다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한강이북은 꽃샘추위가 연일 계속되어 오들오들 춥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나오는 나물이 냉이다. 눈 덮인 곳에도 들춰 보면 새싹이 빵긋 웃어 반긴다. 추위에 강한 봄나물이다. 텃밭에 나가보면 제법 싹이 나와 납작 엎드려 숨어있다. 아낙들이 예리한 칼로 도려내어 냉이를 뜯어 소쿠리에 담아내는 모습이 선하다. 뿌리 채 뽑아야 냉이의 구수한 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냉이는 금방 웃자라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봄의 향기를 맛보지 못한다. 흐르는 물에 세척하여 흙을 털어 낸 다음 다시 한 번 맑은 물에 헹구어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여 내놓으면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도 신발을 내던지고 달려든다.
냉이와 함께 봄나물로 벌금자리가 있다. 냉이를 뜯다보면 꼭 벌금자리가 듬성듬성 뭉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무에 붙어 기생하는 겨우살이와 흡사한 모습이다. 작은 잎들이 무수히 달린 넝쿨이 퍼져 나가 솜뭉치를 연상케 한다. 조금만 뜯어도 소쿠리에 가득 찬다. 속에 박혀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깨끗이 세척하여 생으로 묻혀 내놓으면 냉이의 구수한 향기와는 달리 쌉쌀하면서 달짝지근한 맛이 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손바닥에 넓게 펼쳐 밥을 올려놓고 된장을 발라 쌈을 싸먹어도 일품이다.
냉이와 벌금자리가 웃자라 나물로서 생명을 다하면 쑥이 고개를 내민다. 쑥은 지천에 깔려 있다. 양지바른 언덕에 과도를 들고 나가 조금만 뜯어도 금세 한 바구니가 된다. 낫으로 손을 베었을 때,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 쑥을 비벼 바르면 지혈작용이 탁월하여 응급처치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쑥국의 향기는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는 데 냉이에 뒤지지 않는다. 배고픈 시절 보릿고개를 넘기 위하여 쑥버무리를 해먹기도 했다. 쌀을 쑥과 함께 가루를 내어 스팀으로 쪄내 만든 가래떡은 녹색 빛 쑥 향기에 저절로 손이 간다. 웃자란 쑥을 베어 그늘에 말려 틈틈이 약용으로도 널리 이용되었다.
날이 따스하여 기온이 올라가면 하루나가 새싹을 내밀고 웃는다. 거름을 뿌리고 봄비라도 내리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봄에 나는 것 치고 녹색이 아닌 것이 없지만 유난히 녹색이 강한 것이 하루나다. 겉절이를 해먹어도 좋고 살짝 데치어 나물로 묻혀 먹어도 손색이 없다. 노란 꽃은 아름답기가 봄꽃 중 으뜸이다. 제주도에서는 유채꽃 축제로 발전하여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본격적인 봄나물이 식탁을 풍요롭게 할 날이 머지않았다. 하우스에서 속성 재배된 나물은 노지에서 자란 나물과는 향기 면에서 한참 모자란다. 조금은 힘들어도 들판에 나가 손수 뜯어 만들어 낸 밥상이야말로 봄의 향기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다. 대지가 꿈틀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봄이 주는 선물을 손에 넣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광에 걸어 놓은 소쿠리, 대바구니를 꺼내어 손봐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한다. 나물 캐는 봄 처녀가 있는 그곳으로 나갈 생각하니 쿵쾅쿵쾅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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