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타게 기다리는 봄의 손길
△ 논바닥에 자란 독새풀
연무가 끼였나. 하늘이 부옇다. 바람도 없다. 도심 속에 나무들이 매연에 찌들어 줄기만 앙상한 채 아직 새싹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옥상에 커다란 새가 앉아 있다. 먹을 것이 있을까? 주차장에 차들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동면에 취한 듯 움직임이 없다. 눈이 얼음이 되어 응달에 뭉쳐 있던 자리는 검은 빛 오물이 꽈리를 틀었다. 비가 온다고 한다. 굵은 비 내리면 온갖 오물들을 깨끗이 씻어내어 밝아지겠지. 녹작지근한 오후 생명수를 기다려본다.
삼월도 중반을 달리고 있다. 봄 햇살이 따스하게 쪼이는 외양간에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누렁이가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농사일 돕느라 바쁜 나날을 인간과 함께한 누렁이도 가죽이 늘어져 늙어가고 있다. 덩치가 커서 땅을 파 일구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하는 소들은 농번기가 시작되면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다. 세월이 흘렀다. 할 일이 사라진 소들은 편안하게 먹어 살찌운 채 소리 없이 죽임을 당한다.
창문마다 바람이 들어올까 쳐놓은 비닐도 걷어내야 한다. 창틀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새들도 다녀갔다. 검은 회색의 배설물들이 낙하하면서 바닥에 튀어 지저분하다. 서세원이 배가 고팠나보다. 문틀을 갉아먹은 흔적이 눈에 띈다. 쥐똥이 틈새에 끼어 있다. 걸레로 닦아내보지만 여의치 않다. 뜨거운 물을 부어 단단히 붙어 있는 것을 분리 고압분사기로 쏘아야 날아갈 것 같다. 봄은 기지개를 펴자마자 인간을 바쁘게 부려먹는다.
날이 따스해지자 가죽나무에 매어놓은 매리가 조는 횟수가 잦다. 주는 대로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가끔 이웃집개가 놀러 오면 혓바닥으로 핥아 친근함을 과시하는 저놈들의 팔자는 상팔자다. 붙들어 매어 나돌아 다닐 수 없어도 용케 임신하여 배가 불러오는 것을 보면 그놈들의 구애의 향기는 십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다고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행각을 서슴지 않는 놈들이 있어 가끔 낯 뜨거울 때가 있다. 사람 잘 만나 행복한 반려견이 있는가 하면 버림받아 유기 견으로 전락하여 비참하게 살아가는 놈들이 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반려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일조량이 늘면서 논에는 독새풀이 무성하게 자란다. 논바닥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독새풀은 작은 바람에도 출렁거려 검푸른 파도를 연상케 한다. 보리이삭처럼 올라와 가늘게 꽃을 피우고 꽃가루가 바람에 날린다. 바가지로 훑어 모아 살짝 볶아 먹으면 고소함이 미숫가루보다 더하다. 잘 못 먹다가 기도로 들어가 콜록콜록 기침을 해가면서 먹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먹을 것이 귀했던 어린 시절 독새풀 꽃가루는 고급스런 간식거리였다. 이것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
허청에 드리워진 발이 걷히면서 볕이 들었다. 지게 작대기에 거미줄이 쳐져있다. 걸어놓은 호미 곡괭이에 녹이 잔뜩 쓸어 있다. 날카롭게 날이 섰던 낫도 녹슬어 무디어졌다. 멍석 안에는 쥐들의 놀이터가 되어 겨우내 진을 치고 있었던 흔적이 역력하다. 비료부대는 구멍이 나서 석회가루가 날린다. 허청 벽과 바닥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농기구들은 꽃피는 봄이 오면서 인간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씨앗 뿌리는 봄, 가을에 풍성하게 거두어들이기 위해선 바삐 움직여 준비할때가 바로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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