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엄니 말은 잔소리고 내 말은 훈육이야
시골 엄니가 중풍으로 쓰러진 후 말이 많아졌다. 달리 말하면 잔소리다. 아들딸들이 장성하여 지천명을 넘었음에도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라” 한다. 나 역시 듣기 거북한 것은 사실이다. 며느리들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아마도 판단력이 좀 흐려진 것 같다. 한말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엄니가 하는 말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릇은 여기다 놓아야 하고 쓰레기는 그렇게 아무 곳이나 버리면 안 된다. 칼을 썼으면 제자리에 꽂아야 되고 물은 끓인 물을 먹어야지 수돗물을 먹으면 안 된다. 대문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꼭 닫아야 한다. 모기가 들어오니 마루문도 잘 닫아라. 에어컨은 내가 설정한 데로 건들지 마라. 보일러 역시 건들면 안 된다. 텔레비전 안 보면 전원을 차단해라. 하수구가 막힐 수 있으니 수돗가에 떨어진 포도 잎을 쓸어내라. 이거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그것도 밥이라고 먹은 거냐. 더 먹어라. 자려면 불을 꺼라” 일상적인 일들을 초등학생에게 하듯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한 귀로 듣고 흘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하물며 며느리들은 어떻겠는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만하라”고 해도 소용없다. 잠시 멈추었다가도 무엇이 못마땅한지 잔소리를 늘어놓곤 한다. 그렇게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텐데 말이다. 형님은 60이 다 되어가고 나, 누나, 며느리 모두 지천명에 이르렀는데 물가에 내놓은 세 살 먹은 아이 취급하는 것 같다.
요즘 아들놈이 늦잠을 잔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들놈의 행태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새벽에 무엇을 하는지 불이 켜져 있기도 한다. 내일 모래면 수능을 보는 수험생이 나사가 빠진 것인지 그것을 바라보는 아내는 안절부절못한다. 냅다 달려가 “일어나라”고 호통을 친다. 눈을 비비고 나오는 아들에게 “요즘 공부는 하고 있는 것이냐. 남들은 쌍불을 키고 달려들고 있는데 그렇게 잠만 자면 어떻게 하냐”고 난리를 친다. “당신은 뭐 하는 거야. 애가 공부는 안 하고 인터넷만 하는 것 같은데, 따끔하게 뭐라고 좀 해봐”라며 나를 노려본다.
누구나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 없다. 특히,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 공부”하면 진저리를 친다. “공부하라 하지 말고 방책을 말씀하시오. 내가 바보 멍청이 인줄 아나. 나도 다 생각이 있고 어떻게 하면 좋은 점수 맞아 원하는 대학 가고픈 것, 엄마보다 백배는 많아. 제발 틀에 박힌 잔소리 그만해. 입시정보에 대하여 엄마가 알면 얼마나 알아. 어디서 주워 든 정보 혼란만 가중해. 아침밥이 그렇게 중요해. 잘 만큼 자고 머리가 맑을 때 집중해서 하면 능률이 두 밴데,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것 무엇이 문제야. 낮과 밤이 좀 바뀌면 어때. 제발 엄마 기준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난 엄마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내 인생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 하지 말란 말이야” 아들의 반항에 아내는 어이가 없다며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허공을 주시했다.
“당신 시골 가면 시엄니가 하는 말이 잔소리라며 지겹다고 했지. 엄마 말이나 당신 말이나 틀린 것 하나 없어. 그런데 안 해도 될 말을 반복하니까 잔소리가 되는 것이야. 알았어?” 아내는 발끈하고 달려든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 말은 아들놈 잘 되라고 교육적 차원에서 하는 말이지 절대 잔소리가 아니란 말이야” 하고는 엄마와 자기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에 못마땅하다는 듯 코를 씩씩거렸다. 무엇이 잔소리고 어떤 것이 훈육인지 아리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