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타’를 정당화하는 마눌님
10년 동안 문제없이 쓰던 행거가 무너졌다. 옷들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그것을 정리하는데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 다시 세우고자 했으나 나사를 고정하고 있던 플라스틱이 망가져 허사였다. 큰 가격은 아니지만 다시 장만해야 했다. 매장에 나갈까 하다가 그것을 들고 오는 것도 힘든 일, 인터넷 구매를 선택했다.
구매를 결정하고 이틀 후에 도착했다. 퇴근 후 쏜살같이 달려가 박스를 개봉하여 설치했다. 간단한 작업이지만 땀방울이 맺혔다. 이상한 날씨, 가을임에도 여름 같은 날씨가 지랄 횡포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옷가지를 거는데도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다. 허기도 지고 땀도 나고 짜증이 두 배다.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녀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귀가한다는 시간을 한참 지났음에도 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카톡이라도 보내지 않았다면 아들과 함께 오붓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보라 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고 한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그녀의 습성이다. 늘 묵음 아니면 진동모드다. “상대방에게 소음공해를 주지 않기 위한 방책”이라며 합리화를 주장하는 그녀에게 무어라 말할 순 없었다. 급히 연락할 일이 발생했을 때 가맣게 타들어가는 심정을 알려나 모르겠다.
설치된 행거에 옷을 걸어 정리정돈하고 나니 8시가 넘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TV 전원 버튼을 눌렀다. ‘뭐야’ 아직 초반인데 스코어는 1:1이었다. 배꼽시계는 꼬르륵 신호를 보냈다. 찬밥을 비벼 먹을까 하다가 그녀와 같이 먹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참기로 했다. 카타르와의 축구는 막상막하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졌다.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당당하게 들어온 아내는 “밥 먹었어” 하면서 밥통을 열어보았다. “뭐야, 아직도 밥을 먹지 않고 있으면 어쩌란 말이야”라며 투덜거렸다. “뭐 하긴 뭐 해. 자기 오는 동안 행거 설치하고 옷 정리까지 다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라며 짜증 섞인 화를 냈다. “늦게 온다고 카톡 했는데 보지 않았냐"라며 오히려 큰소리치는 그녀는 밥상을 차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톡을 열어 보시구려” 미심쩍은 듯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귀가시간이 한 시간이 차이 난 것을 안 그녀는 “오타”라며 “얼마나 피곤했으면 오타가 났겠냐"라며 ”화를 내는 당신이 잘못“이라며 미안해하지 않았다.
피곤하다며 드러누울 판이던 아내는 냉장고를 열고 김치를 꺼내고 야채를 볶아 상차림을 했다. 나보다 더 배고픈 아들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식탁에 앉아 있었다. 고기반찬은 아니어도 밥맛은 꿀맛이었다. 겉으론 당당해 보였지만 약간의 미안함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축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3:2로 이기고 있었다.
아내는 나이 먹을수록 늦게 오는 횟수가 잦다. 그 반대로 나는 술좌석을 가급적 피한다. 술도 마시지 못하는 맹물파인 그녀는 수다모임에 적극적이다. 스트레스 푸는 데는 수다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그녀는 먹는 것 또한 뒤지지 않는다. 저울에 끼니때마다 올라가서는 아랫배를 두드리며 “문제야 문제”라면서도 식탐이 줄어들지 않는다. 맞벌이로서 힘든 것은 알지만 지나친 모임은 가정의 화목에 마이너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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