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명절 수십 번 바뀐 그녀의 표정
영화가 끝났음에도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다. 눈물을 말리기 위해서다. ‘벤허’ 영화를 보는 내내 맺히기 시작한 눈물은 결국 콧잔등을 적시고 말았다.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청년 시절에 본 것과 마찬가지로 박진 감 넘치는 전차 경주 장면은 한동안 넋을 잃게 했다. 누명을 쓰고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벤허’는 쉽게 포기해버리는 청년백수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새벽에 집을 나섰음에도 길은 주차장으로 변한지 오래다. 작전을 잘 짰다고 생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상대가 수를 읽어 버린 것일까. 해년마다 출발시간을 조금씩 앞당겼는데 이젠 소용이 없어져 버렸다. 워낙 날고 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가장 좋은 출발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아내 의견을 존중했다. 충분한 잠을 자고 가야 한다는 말에 반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이번 추석은 처가를 가지 않는다고 선언한 아내의 심기를 건드려 반란을 일으킨다면 나만 손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석 보너스도 반을 뚝 잘라 주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잠을 청한 아내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고개를 휘청하며 가자미눈으로 표정을 읽었다.
새벽 4시만 출발했어도 이러진 않았을 것인데, 사실 난 3시에 출발하려 했었다. “빨리 도착해서 쉬는 것이 났지 않냐”며 설득했지만 “중간에 일어나 가는 것 또한 피곤한 일이”라며 “5시에 출발하자”는 아내의 의견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것 역시 지키지 못하고 5시 20분에 출발했다.
장장 7시간을 허비 한끝에 도착했다.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따따불이 걸린 샘이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려 기지개를 펴고 휴식을 취했지만 피곤은 가시지 않았다. 교대를 해줄 만도 한데 꿈쩍을 하지 않는 아내가 미웠다. 결국 등짝에 담이 오고 말았다.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다. 기침을 할 때면 그 고통이 더욱 심했다.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조카들을 대동하고 성묘를 다녀오기로 했다. 썩 내키지 않는 것 같은 아내를 대동하고 출발했다. 기름기를 빼기 위해선 걸어야 했다. 햇볕이 따가운 시골길을 걷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나 보다. 차를 타고 가지 않은 것에 불만을 토로 한 아내는 거친 숨을 물아 쉬었다. “30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차를 타고 가면 시골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없지 않느냐”며 당위성을 피력했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평소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 아내와 조카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큰대자로 누워버렸다. ‘저렇게 체력이 약해서야 5백 킬로가 넘는 친정은 어떻게 갈 것인가’ 걱정할 필요 없다. 처가를 갈 때면 펄펄 나는 새색시로 변모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전날부터 만만의 준비를 하고자 분주히 움직인다. 샤워를 1시간 이상 하고 신발이 편치 않다며 현관에서 밍그적 거리며 출발시간을 지연했던 시댁 가는 것과는 딴판이다.
성묘를 다녀온 후 단잠을 자고 난 아내는 나의 눈치를 살폈다. 빨리 가자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쩌랴 여성 상위 시대인데, 저녁을 먹지 않고 출발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고속도로 전광판은 황색과 적색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지체와 정체구간을 도착하고 나면 뻥 뚫리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기뻐 만세를 불렀다. “이렇게 쌩쌩 달리는 것은 자기 덕이다.”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는지 “설에는 나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한다.
추석을 쇠고 뒤로 3일이나 휴일이 이어진다. 일찍 상경하는 바람에 팔자가 늘어진 아내는 영화를 보자고 한다.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대동하고 가려 했지만 마다한다. 조조를 보자 했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면 조금만 부지런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밀정’과 ‘벤허’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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