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공짜는 없다.

말까시 2016. 9. 5. 17:06

◇ ‘세상에 공짜는 없다’

 

두 장의 공자 표가 있었다. ‘전영록 데뷔 40주년 기념 콘서트’가 가까운 곳에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내와 함께 뛰어갔다. 입장시간이 가까워 오자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줄을 서야 했다. 일찍 오신 분들은 육칠십 대 할머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사이 껴 있으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새치기하는 노인들이 많아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날씨도 무척 더웠다. 부채를 부치며 밀고 들어오는 할미들 틈에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내주었다. 아내는 기필코 자리를 사수했다.


무대 근처에 자리를 잡고자 쟁탈전이 벌어졌다. 자리를 잡고 보니 무대가 코앞이었다. 이윽고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무명가수가 분위기를 띄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생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 있단 말인가’ 신나는 리듬에 어깨가 들썩였다. 성급한 할머니들은 막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세곡을 부르고 주최 측에 마이크를 넘겼다.


군살 없이 날씬한 중년의 사내가 나왔다. 개미 소리로 인사를 한 후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쿠르즈 여행을 비롯하여 상조회 상품을 알리는 그는 청산유수였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약간 기분은 상했지만 이왕 들어온 김에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한 시간여 홍보하는 동안 행운권 추첨과 사은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탈을 방지했다. 타사 제품과 비교우위를 자랑하며 틈틈이 유명 연예인이 출연한 광고도 보여 주었다. 그렇게 부담 가는 금액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커피와 술값을 들먹이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변을 토하는 그는 특유의 억양과 몸짓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고정케 했다.


직원들이 통로를 오가며 신청서를 나누어 주었다. 홍보맨은 웅변가가 되어 흥을 돋우었다. 통로를 왔다 갔다 하던 직원들이 신청서를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이트클럽을 방불케 하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직원들은 신청서를 들고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여기요.” 그것을 받아 들고 연단으로 뛰어가는 사내는 신났다.


이렇게 해서 상조회 가입신청은 끝났다. 홍보맨이 들고 있는 신청서를 보니 이상하리만큼 많았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상품이긴 하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결정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구리를 친다. “자기야 나도 한구자 들었어. 금액도 똑 같아”라고 말하는 아내는 칭찬을 듣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래, 잘했다.” 더 이상 일언반구를 하지 않았다.


이윽고 전영록이 나타났다.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나온 그는 자그마했다.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멈춘 것 같았다. 나이를 물어보는 극성팬도 있었지만 답은 주지 않았다. ‘애심’, ‘종이학’ 등 십여 곡을 부르는 동안 관객과 가수는 하나가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행운권 추첨이 벌어지나 했는데, 흰머리 아저씨가 나와 적외선 치료기를 선전하기 시작했다. 치료기 한 대만 있으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의 달변이었다. 오늘 구매자는 대폭 할인하여 드린다는 말에 너도 나도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것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다.


주말, 세 시간여 머물러 있는 동안 현실과 동떨어진 광경을 보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아하! 이렇게 해도 장사가 되는 구나’ 하고 갸우뚱했다. “당신 같은 사람만 있으면 저 사람들 거덜 나겠다”고 말하는 아내는 “가자”라고 말하는 나를 무시하고 끝까지 버티자고 한다. 행운권 추첨은 꽝이었다. 공연장에 온 사람 모두에게 ‘장미 칼’ 하나씩을 주었다. 귀한 시간을 빼앗겼지만 장미 칼 두 개를 들고 기분 좋게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