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속 아이들에게 추석은 없다.
추석이 내일 모래다. 코앞으로 다가온 명절을 어떻게 쇠어야 할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중에 취준생들과 사회통념상 정석에서 조금만 벗어난 사람들은 더하다. 무수히 쏟아지는 질문에 상처를 받으면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만남이 반갑기도 하지만 학교, 취업, 혼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면 답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한다. 그러니 고향에 가고 싶지도 않으며 또한 가족 친지를 만나 뵈는 것도 꺼려진다. 이번 추석에도 아내와 단둘이 가기로 했다.
추석이라고 떠들썩하다. 어제 마트에 갔더니만 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품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향에 가려면 선물 보따리를 준비해야 하는데, 딱히 살만한 것이 없었다. 눈에 들어 값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오고 가는 길 교통비도 만만치 않은데 먹고 마시는 음식 역시 카드를 여러 번 긁어야 가능할 것 같다.
이것저것 담아 보니 묵직했다. 형님과 누나에겐 택배로 보냈다. 시골에 있는 노모를 위해 먹기 좋은 부드러운 것으로 장만했다. 이가 없고 식성이 까다로워 준비에 어려움이 많다. 대충 아무것이나 집어 담는 나를 나무라는 아내는 정확한 상표와 색상까지 맞추어 가며 골라냈다. 역시 음식을 챙기는 것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추석에 본가만 들리기로 했다.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소속 아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몇 날 며칠 집을 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양가를 방문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금껏 명절을 쇠었다. 몇 번을 거듭하여 권했지만 아내는 극구 사양한다. 아이들과 함께 라면 고향 가는 길이 즐거울 텐데, 몇 년째 아이들 없는 둘만의 방문으로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으레 물어보는 아이들 신상에 관한 문제에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비참함이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어려운 문제가 풀리겠지만 그날이 기약이 없다는 것에 불안하다. 본인들은 더 답답할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다”라고 달래보지만 아직 경험이 미천한 아이들은 불만 섞인 눈초리로 사회를 원망하며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안되면 조상 탓이다’라는 옛말이 있다. 요즘 아이들도 서슴없이 사용한다. 해도 해도 안 되니 그럴 만도 하다. “눈높이를 낮추어 찾아보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라고 설득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해방 이후 삶이 그리 녹록한 때가 있었는가. 일부 부유층 빼고는 숨 쉬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하루도 움직이지 않으면 굶어죽어야 할 판에 학업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공업화를 거치며 삶이 낳아지기는 했지만 늘 취업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보다 부지런히 노력하고 아끼고 저축하여 하나씩 쌓아 올려야 만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힘들어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 남이 즐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따라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은 점점 멀어진다.
내년 추석에는 우리 가족 네 명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고향에 갈수 있을까? 자랑스럽게 내 세울 것이 많은 그런 명절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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