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진감래
엊저녁 창문을 열어 놓은 줄도 모르고 주무시다가 싸늘함이 밀려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오잉, 이게 뭐란 말인가. 이불을 둘둘 말아 철옹성을 친 그녀는 미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저곳 더듬어 보았지만 빈틈이 없었습니다. “신랑은 춥거나 말거나 자기만 잘 자면 그만입니까?” 하긴 살 만큼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이불을 풀어 공격할까 하다가 포기했습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신랑 타령이야” 퉁명스럽게 던지고는 이불을 감싸 날을 세웠습니다.
아이 시팍, 연식이 솔찬히 되었는데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학습한 데로 틈만 나면 되새김질을 하고 때론 온몸으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랑한다" 하면 거짓이라며 비웃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수용하는 것이 거시기 한 것일까요.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요. 다시 한 번 초고속 배달을 해보았습니다. 배시시 웃더군요. “정말이야. 정말 나를 사랑한 단말이야” 확인 사살을 하더군요.
“일단 이번만은 받아들인다"라며 “좀 더 지켜보겠다"라는 심보입니다. 연을 맺은 지가 가물가물한데 뭘 더 지켜본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되받아 칠순 없었습니다. 한번 맺은 인연 죽는 그날까지 저버릴 순 없잖아요. 사실 방패보다 창이 더 날카롭습니다. 창은 공격을 위한 무기고 방패는 말 그대로 방어용이지요. 남자를 창으로 여자를 방패로 비유하지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우리 집 마나님입니다. 화가 나면 무섭습니다. 사드로 포착하여 아픈 곳을 팍팍 찌릅니다. 창을 쥐고 있지만 꼼짝을 못 합니다.
억울합니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시골 엄마에게 일러바칠까 했지만 바보 취급받을 것 같아 접었습니다. 아이들이 들을까 큰소리도 못 칩니다. 부모가 언성을 높이면 기가 죽어, 하고 싶은 말도 못할 것입니다. “사나이가 칼을 뽑으면 무라도 찔러야 하지 않냐"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큰일 납니다. 함부로 대들었다가는 집안 분위기 이상해집니다. 석 달 열흘 입을 다문 채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답답해서 살 수 있을까요. 못 삽니다.
요즘 한계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인내의 척도를 재는 기계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엊저녁 폭발하는 줄 알았습니다. 귀가 시간이 지났음에도 오지 않는 그녀 때문입니다. 분명 8시까지 온다는 그녀는 일언반구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카톡을 보냈지만 답이 없습니다. 혹시 납치되지나 않았을까 별이 별생각이 들더군요. 한동안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작은방에서 나온 아들이 배가 고프다고 난리를 칩니다. 그녀와 같이 먹으려고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앞다리 살로 소금구이를 하고 번들거리는 기름으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로 했지요.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아들에게 원망을 들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저것 양념을 넣어 아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설거지까지 끝냈음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삑삑 삐-익”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니 그녀였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고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화를 내지 않는 나를 의아 한 듯 쳐다봅니다. “어깨가 아파서 마사지를 받느라 카톡을 못 봤다"라며 당당하게 들어왔습니다.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노려보는 나에게 큰소리칩니다. “설거지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여기 고춧가루 안 보이나” 할 말을 잃었습니다. ‘참아야지. 암, 참고 말고’ 푸지에 입성하는 그날까지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창이 아닌 날개를 달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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