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맹물파하고 못 살겠다.

말까시 2016. 10. 25. 14:55

◇ 맹물파하고 못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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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독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깨도 아프고 옆구리와 등짝에는 벌레가 기어다는 것처럼 감각이 남다르다. 휴식시간을 갖고자 하면 술좌석이 생기고 안 간다고 그렇게 다짐했지만 이미 신발 끈을 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인간관계상 술을 멀리할 수 없는 현실에 등지고 살아갈 수도 없는 일, 오늘도 비가 오니 벌써부터 한 잔 하자는 문자가 진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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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피곤하기도 하고 등짝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잡고자 땡칠이가 되어 귀가했다. 어깻죽지도 부드럽지가 않고 눈도 침침 한 것이 중병이 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병원에 갈 처지는 못 되고 민간요법으로 치료해볼까 해서 목욕탕으로 향했다. 공중탕이 아니고 집에 있는 화장실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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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과 뜨거운 물을 정신없이 번갈아 부었다. 담금질과 냉찜질을 하는 동안 샤워부스와 거울에 성에가 잔뜩 끼었다. 얼굴 상태를 볼 수가 없었다. 비누 거품을 바르고 물을 흘려 제거했다. 피곤해 지쳐 있던 얼굴에 생기가 도는지 볼그스레하다. 계속하여 찬물을 들어부었다. 피부온도가 내려가면서 가슴속에서 뜨겁게 달구어진 혈액이 화산 폭발하듯 살가죽을 두드렸다. 결리던 어깨가 풀리고 기어 다니던 벌레가 온데간데없어졌다. 술독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신선한 피가 공급되니 저절로 치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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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맑아졌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허기가 밀려왔다. 아내는 아직 오지 않았다. 밥하는 것도 귀찮고 못처럼 상큼해진 몸 상태로 외식을 하고 싶었다. 단품 음식으로는 순댓국이 최고다. 요기도 되면서 술안주까지 되니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은 없다. 순댓국에 소주 한 잔이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만족감으로 따진다면 꽃등심과 같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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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톡을 날렸다. 단박에 거절당했다. 아침에 끓여 놓은 된장국이 있으니 그것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식어빠진 국을 데운들 무슨 맛이 있겠는가. 먹을 만큼만 끓이라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대단한 고집불통이다. 다시 한 번 날려보았지만 허사였다. 맹물파인 아내는 술 한 방울만 들어가도 목덜미가 붉어지면서 숨이 거칠어지고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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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륵 허기진 배에서는 밥 달라는 신호가 진동을 했다. 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는 순댓국이 아른거린다. 기필코 먹어야 갰다는 각오를 다진 나는 아내를 설득할 방도를 골똘히 생각했다. 야들야들한 머리고기가 들어가 있는 순댓국을 생각할 때마다 고이는 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것에 소주 한 잔이면 한동안 즐거움속에서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데, 단돈 1만 원이면 해결할 수 있는 쉬운 것인데, 이렇게 고민을 하다니 한심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한 내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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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아내가 들어왔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순댓국 먹으면 안 되나”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버럭 화를 낸다. 아!! 어쩌란 말인가. 피곤하다며 아들하고 다녀오란다. 아들은 이미 먹었다고 한다. 청승맞게 혼자 갈 수는 없는 법, 여기서 포기하지 않으면 대판 싸움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아내는 된장국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밥통에서 나온 밥은 아침의 것이라 딱딱했다. 전자레인지로 데워 된장국에 말아 김치로 저녁을 때웠다. 너무나 서운한 나머지 담근 술로 목을 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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