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기 종기 모여 자는 거실 가족
오라는 비는 감감무소식이고 더위는 나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루 종일 냉방기를 가동하는 사무실은 쾌적하기는 하지만 냉방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더위를 먹었는지 기력이 없는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더위란 놈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서가 지나 수그려 들 만도 한데 저놈의 매미까지 울어대니 짜증이 두 배다.
소싯적 안방에서 큰 이불을 덮고 엄마, 아빠, 누나, 형들과 함께 자던 그때가 재연되고 있다. 더위란 놈이 만들어 놓은 진풍경이다. 초저녁에는 다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가 열기가 최고조로 오르는 자정 무렵이면 거실로 모여든다. 소파는 아내 차지, 나는 마룻바닥에 큰대자로, 키가 장대만 한 아들은 의자를 밀어붙이고 탁자 밑으로 들어갈 판이다. 취준생인 딸내미는 얇은 이불을 둘둘 말아 빈틈없이 싸매고 주무신다.
잠시 에어컨 전원을 내려버리면 날벼락이 떨어진다. “전기 요금 아끼려다 더위 먹으면 약 값이 더 들어간다"라며 리모컨을 빼앗아간 딸내미는 파워 버튼을 눌러댄다. 아직 돈을 벌어보지 못한 딸내미는 돈 아까운지 모르는 것 같다. 아들은 이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밤새 이리저리 뒹굴다 보면 거실을 한 바퀴 돈다. 가족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청소차의 둔탁한 엔진 소리와 쓰레기 낙하하는 소리가 새벽잠을 깨운다. 새벽임에도 미쳐 울어대는 매미는 목청을 높인다. 시간을 보니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다. 금메달 소식을 듣기 위해 TV 전원 버튼을 눌렀다. 마침 여자 양궁 개인전을 하고 있었다. “뭐야! 고이 자고 있는데 텔레비전을 켜면 어떻게 하나, 당장 끄시오” 소파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말 폭탄을 쏟아낸다. 안방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다투는 사이 딸내미와 아들은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보고 난후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곤히 자고 있는 아내는 아침식사를 잊은 것 같다. 떨그럭 거리는 소리가 거슬릴 만도 한데 쌕쌕거리며 잘도 잔다. “이렇게 더운데 가스 불 켜고 음식 장만하는 것도 고역이라며 사 잡수시오”라고 한다. 아내는 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까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한여름에 더운 것이 당연하지만 금년 여름은 유난히 그 정도가 남다르다.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 도심 한복판의 열기는 찜통과 다름이 없다. 길을 가다가 실외기와 환풍기 옆에 지나가다 보면 뜨거운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하루 종일 틀어대는 상가의 에어컨에 비해 가정용 전기는 누진 젠가 뭐다 해서 마음 놓고 가동할 수 없다. 성난 민심이 들고 일어났다. 정신 차린 정치권에서도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이다.
“먼저 입주한 갈매인 이여! 공사 소음과 먼지로 창문을 제대로 열수 없을 텐데, 이 더위를 어떻게 이겨내십니까? 나날이 오르고 있는 웃돈에 더위도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닌지. 즐거운 비명이 여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구릉산의 산바람과 갈매천의 강바람을 제대로 느끼려면 2018년 지구가 완성되는 시기까지 기다려야 될 것 같습니다.” 가정용 누진제가 조속히 조정되어 전기료 걱정 없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