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밑
아침에 짓눈개비가 내렸습니다. 쌓일 정도는 아니고요. 마지막 내리는 눈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우산도 없이 모자도 쓰지 않고 그냥 맞았습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표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남달라 보였습니다.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입을 꽉 담은 모습이 대단한 각오를 한 것 같았습니다. 청마의 해 딱 하루 남았습니다. 항상 아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는 것이 세밑풍경이 아닌가 합니다.
50줄을 넘어 달리다보니 피부에 와 닿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밤새 술을 마셔도 다음날 아침이면 거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피곤함이 밀려 왔습니다. 화장실 가는 횟수도 잦아졌습니다. 그만큼 연식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옛날 같았으면 일선에서 물러나 곰방대를 들고 진두지휘를 할 나이지요. 그러니 60이 되면 환갑잔치를 했지 않았습니까. 지금 환갑잔치한다고 하면 욕을 태바가지로 얻어먹을 것입니다.
피부표면이 거칠어 졌습니다. 찬바람이 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며칠 다듬지 않으면 각질도 일어나더군요. 구루모를 바르지 않아도 개기름이 흘렀던 얼굴이었는데 그렇게 빛나던 윤기는 사라지고 검은 반점이 나타났습니다. 먹는 것이 시원찮은 것도 아니고 운동도 모자람이 없는데 출력이 자꾸만 떨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섭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왠지 서글퍼지는 군요.
밥상을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던 것이 언젠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머리통이 커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새벽에 나와 별을 보고 들어가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적응 하려다 보니 자연 가족구성원의 소중함을 잃은 듯합니다. 두 놈이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졸업식을 하는 그날부터 무소속입니다. 바라보는 부모도 속이 타 들어가는데 지네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취업난이 건국 이래 최악이라 합니다. 아이들 표정이 장난이 아닙니다. 동력을 잃은 듯 얼굴에 핏기가 없습니다. 지금껏 취업걱정 없이 탄탄대로의 삶이 있기나 했습니까. 나름대로 어려움을 뚫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해쳐나가는 사람 있기 마련입니다. 남보다 한발 더 내디딜 수 있는 노력이 필요 하겠지요.
마누라 눈가에 잔주름이 가득합니다. “당신이 나를 고생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원망하는 아내에게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자의 아픔은 남자들이 원흉이라고 ”고 말하는 아내는 남자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직하면 유행가 가사가 나왔겠습니까.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해’ 맞는 말입니다. “마누라를 종처럼 부려먹는다.”고 하는 아내는 늘 불만입니다.
오늘밤은 무척이나 길겠지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자야 할 것입니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으로 희망찬 새해가 밝아올 것입니다. 나이 들어 골판지가 될지언정 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꼬부랑 할머니도 해돋이를 보러 오르고 또 오르는 모습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소망은 일 년을 즐겁게 할 것입니다. 오늘밤 좋은 꿈꿔 웃음꽃이 만발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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