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주
“괴기 반찬도 올라 왔는데 한잔 마셔도 되나” 저녁상에 조기새끼가 구워져 올라왔다. 영광굴비를 비싼 가격에 샀다고 한다. “언제 허락받고 마셨나. 새삼스럽게 물어보긴” 젓가락을 푹 찔러 살점을 발라 입어 넣어보니 맛이 좋았다. 일전에 담아 놓은 칡술을 한클라스 딸아 마시기 시작했다. 굴비 살점 하나하나에 술 향기 고이 배니 그 맛이 배가 되었다. 한클라스 마셨는데 취기가 올라왔다. 역시 반주는 소화제이면서 기분을 좋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는 폭음, 과음, 반주에 일가견이 있었다. 국가 대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주를 드신 날은 온 동네가 떠나갈 듯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온다. 맨 꼭대기에 있는 집까지 오는 동안 대문이라고 생긴 것은 발로 차고 보이는 족족 시비를 걸었다. 아버지가 술 마시고 귀가하는 골목에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고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가족 모두 피신해야 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틈틈이 막걸리를 마셨다. 그렇지 않고는 힘든 농사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해질녘이 되면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지는 일이 허다했다. 그렇게 마시고도 모자라 저녁을 먹으면서 필히 반주를 즐겼다. 밥을 다 드실 때까지 반복되는 술잔은 주사를 만들어 냈다. 그만 마시라 해도 막무가내였다. 또 피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잠이 들 때까지 한데에서 있으려면 여간 고역이 아니다. 특히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하는 고통스런 일이다.
아버지의 주사에 넌덜미가 난 나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묵혀두기에는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권유에 한잔 마셔보니 기분이 좋아지며 용기가 솟구쳤다. 아버지의 정기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주사는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굳은 각오로 마신이래, 주당의 반열에 올랐다. 술에 취하면 말은 많아지지만 주사는 아니다. 그래서 아내는 술 마시는 것에 극구 말리지 않는다.
언제 부턴가 반주를 즐기기 시작했다. 신혼초 동서 집에 가면 장롱 위에 술 단지가 가득했다. 갈 때마다 주전자에 딸아 마시는 담금주 맛에 푹 빠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반주를 즐기는 동서는 애주가였다. 술 담는 법을 배워 인삼주를 비롯하여 칡, 겨우살이, 더덕, 매실, 엉겅퀴, 뽕나무뿌리를 이용하여 술을 담았다. 삼 개월 정도 숙성하면 약성분이 빠져나와 그윽한 향기를 만들어 낸다. 재료마다 색다른 향은 술맛을 한층 더해준다.
담금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채취한 재료를 썰어 말린다. 그래야 술이 맑다. 어느 정도 숙성이 되면 재료를 건져내고 술만을 보관한다. 시간이 갈수록 색은 짙어지면서 오묘한 향을 낸다. 재료마다 발산하는 특유한 향은 주당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담금주를 반주로 즐기는 나는 즐거운 밤을 보낼 수 있다.
건강을 위하여 술을 줄이라는 아내는 술 한 방울도 못 마시는 맹물파다. 오묘한 술맛을 알 리가 없다. 죽는 그날까지 술 없인 못살 것 같다. 일 년 내내 맨 정신에 사는 것보다 약간 몽롱한 상태로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찬바람이 몹시 불던 날 개봉한 겨우살이 담금주로 반주를 즐길 것을 생각하니 침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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