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팔순 노인의 겸손함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말까시 2014. 10. 1. 11:30

 


◇ 팔순 노인의 겸손함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시월첫날 기온이 내려가 쌀쌀했다. 엊그제 내린 빗님이 감기를 몰고 온 것인지 머리가 무겁다. 그것보다는 酒님을 가까이 해서 쇠약해진 육신에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 한 것 같다. 기력이 없다 보니 소화불량으로 속이 더부룩하다. 자전거를 타고 마구 달려도 땀이 나지 않는다. 기온이 내려 간 탓도 있겠지만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럴 땐 푹 쉬어야하는데’ 무거운 육신을 이끌고 출근을 위해 자전거에 올라탔다.

 

강바람이 제법 찼다. 무척이나 많았던 아침운동 마니아들이 눈에 띄게 적었다. 젊은 처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라톤을 하는 중년의 아줌마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공기를 갈랐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분들은 기온에 관계없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맑은 강물 속에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무리지어 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잉어들은 우두머리의 선두를 따라 달아났다.  

 

새벽에 개를 끌고 나오는 노인들이 있다. 목줄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개들은 아무 곳이나 실례를 하고 다닌다. 하천공원이 자기 집 앞마당인줄 알고 개처럼 날뛰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다. 산책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길로 걸어가는 노인은 무슨 심뽄가. 요리저리 피해가야만 하는 곡에 운전은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무 곳이나 가래침을 뱉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산책하는 사람들도 꼴불견이다. 시들해진 갈대, 힘없이 주저앉은 잡초들, 나의 마음만큼이나 무거워 보인다.

 

이른 시각인데 팔순도 넘어 보이는 노인이 승강기 앞에 다가왔다. “이층에 내리는가 모르겠네.” 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밭고랑처럼 주름이 자글자글 했다. 키는 어린이처럼 작아졌고 어깨도 기울어지고 다리는 오자로 벌어져 축구공이 지나가도 남을 법 했다. 바싹 마른 육신은 작은 바람에도 넘어질 것 같았다. 돋보기안경을 쓴 노인은 서있는 것조차 힘들 듯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네, 할머니 이층에 서고말고요.” 할머니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난 승강기에 오르자마자 이층 버튼을 누르고 내가 가고자 하는 층을 눌렀다. 어구적어구적 걸어 들어오신 할머니는 버튼을 누르고자 한참을 처다 보았다. ‘할머니 이층 눌렀습니다.’ 라고 말 하려는 순간 “눌러져 있네.” 하면서 “고맙고 감사합니다.”를 잊지 않으셨다. 굵은 주름이 많은 것을 보니 할머니의 삶도 순탄치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주름에 흠이 가지 않았고 다랑이 논처럼 보기 좋았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것이 얼굴에 확연히 나타났다. 승강기 모퉁이에 곱게 서있는 할머니는 천사였다.  

 

좀 더 승강기에 머물고 싶었지만 이층이라 금방 멈추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숙이며 “좋은 하루 되십시오.” 인사를 하고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도 못했는데 문은 닫히고 말았다. 세상에 자식뻘 같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이렇게 까지 인사를 할 수 있는 겸손함이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반말과 욕지거리를 서슴없이 하는 수구꼴통 노인들과는 사못달랐다. 뛰뚱뛰뚱 승강기를 빠져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아름답고 위대했다. 감기기운이 있어 무거웠던 육신에 원기가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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