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천고여비

말까시 2014. 9. 17. 10:56

 


◇ 천고女비 

 

대한민국 여성들은 추석을 기점으로 살이 찌기 시작한다. 시댁을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쌓인 스트레스가 폭식으로 돌변하여 아랫배가 늘어난다. 추석 음식을 만들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직행한 음식은 볼록한 배를 남산만 하게 한다. 나물을 무쳐 먹어보고 국을 끓여 간을 보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늘어난 칼로리는 바로 살로 가기 마련이다. 명절이 달마다 있다면 호리낭창한 여인구경하기가 모래밭에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렵지 않을까 싶다.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아내의 뒤를 따라 나섰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바구니를 들고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먹거리 코너이다. 곳곳에 마련해놓은 시식코너에 기름진 음식이 익어가고 있었다. 이쑤시개를 이용하여 맛을 보고는 나에게 먹어보라 권한다. 점심 먹은 지가 한참이 지난 시간에 시장기를 느끼는 것은 당연지사 보는 족족 맛을 보는 아내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장을 보러 온 것을 잊은 채 시식코너에 빙 둘러 맛을 보는 여인들은 하나 같이 뚱보였다.  

 

얼마 전 ‘명량’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간적이 있었다. 매표를 하고 잠시 기다리는 사이 극장 풍경을 훑어보았다. 젊은 애들이 주류를 이루는 극장 안에는 음료와 팝콘을 사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팝콘을 담은 용기가 어마어마했다. 저렇게 많은 것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영화가 시작되자 팝콘을 부셔 먹는 소리가 요란하다. 처자들의 손놀림은 남자의 두 배정도 빠르다. 입에 넣기가 무섭게 바로 집어 드는 처자들은 바닥이 드러날 때 까지 먹고 또 먹었다. 달콤한 콜라와 함께 먹어 치운 팝콘 역시 고칼로리로 다이어트에 치명적이다.  

 

수다쟁이 아줌마들이 웰빙식당에 모여 앉아 있었다. 나름대로 다이어트에 좋은 식사를 하고자 야채가 무한대로 제공되는 저칼로리 음식을 선택한 것이다. 남자들이야 밥 먹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아줌마들은 자리를 앉기 무섭게 먹기 시작해서 수다를 떨다보면 해 넘어가는 것은 일순간이다. 고기를 줄이고 야채샐러드를 서너 그릇씩 비우고 디저트로 과일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일어선다. 드레싱의 칼로리가 얼마나 높은지 간과한 아줌마들은 뚱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한참동안 무엇인가 열심히 먹고 있는 아내가 이상했다. “무엇을 그리 오래 드시나이까?”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는 아내는 점심을 야채와 과일로 때운다. 매일 같이 저울에 올라가 무게를 재는 것을 빠트리지 않는 아내는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무엇을 드시나이까?” 재차 물었다. “아이들이 발라 먹고 남은 고등어살점을 뜯어 먹고 있나이다.” 대충 먹고 남겨버린 고등어를 그냥 버릴 순 없다는 아내는 마지막 남은 살점을 발라먹고는 일어섰다. 살이찌지 않을 수 없다. 

 

추석 때 먹은 음식으로 아내와 난 2키로 씩 불었다.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추석 때 만들어 논 음식이 그대로다. 냉동해 놓은 송편, 시골에서 가져온 먹거리들이 다이어트에 장애 요인이다. 그것이 떨어지는 날부터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맛깔스런 음식과 과일이 넘쳐나는 풍성한 가을, 살을 빼는 것보다 더 찌지 않는 노력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오늘따라 적막한 사무실 뚱보 아줌마들이 내쉬는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