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절약이 제로인 우리 집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태풍 너구리가 올라오면서 뜨거운 기운을 밀어 올려 한반도를 뒤 덮었다. 선풍기 바람으로는 더위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냉방기 가동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직 무더위 초기인데, 벌써 더위에 허덕이고 있으니 팔 월 한 달 푹푹 찌는 더위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습도를 제거하면 더위를 모르고 살수 있다고 선전을 하는 가습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장만해볼까 했는데 접었다.
소싯적 여름은 선풍기 하나로 무난했다. 부채가 주류를 이루어 외출할 때도 들고 다녔다. 덥다 싶으면 마을 어귀 둥구나무로 나가 그늘에 앉아 있으면 시원했다. 한 낮에는 이동을 삼가 했다.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방바닥에 누워 있으면 산에서 내려오는 골바람이 방안을 한 바퀴 돌아 더위를 시켰다. 두레박으로 우물을 퍼 올려 등목을 하면 가슴속까지 시원했다. 미숫가루 한잔으로 갈증을 몰아내고 배속까지 냉기를 전달하면 더위는 온데간데없다.
선풍기가 방마다 돌아가고 있다. 거실에서는 냉방기가 찬바람을 뿜어내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은 냉기를 잡아먹어 냉방기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가스레인지 불꽃에서 나오는 열기 또한 집안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무더운 여름에는 지지고 볶는 음식은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장시간 끓여야 하는 탕이나 찌개 역시 마찬가지다. 여름옷은 다림질이 필요치 않는 캐주얼 위주의 옷으로 장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고 들어와서 샤워를 하는 아이들은 온수를 사용한다. 한여름에 온수를 사용하는 아이들 정말 이해 할 수 없다. 차가운 물이라도 조금만 참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데 이것은 보통 낭비가 아니다. 모자람 없이 자라온 아이들은 작은 불편도 이겨내려 하지 않는다. 머리를 말리기 위해서 전기를 많이 먹는 드라이기를 사용한다. 저절로 돌고 있는 선풍기 바람을 쏘이고 있으면 마를 것인데, 에너지 절약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밤이 되면 가관이다. 방마다 전등이 설치되어 있다. 책상에 스탠드가 있다. 공부를 함에 있어서 스탠드를 사용하는 것을 나무랄 순 없다. 사실 스탠드불빛이 있을 때는 천정 등을 소등해도 된다. 취침시간이 넘었음에도 방에는 불이 훤하다. 스탠드까지 불을 밝히고 있으니 에너지낭비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늦은 저녁 방마다 순찰을 돌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내 역시 거실에서 큰대자로 누워 있다. 선풍기도 돌아가고 거실과 부엌등이 대낮같이 비추고 있다. 텔레비전은 저 혼자 지껄이고 그림을 허공에 날려 에너지를 마구 소비하고 있다.
소리 없이 새나가는 에너지가 가정경제 및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줄수 있다. 피부로 직접 느끼지 못한다 하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쌓이고 쌓여 생긴 낭비벽은 가정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일정시간 움직임이 없으면 소등되는 장치를 설치 할 수도 없고, 매일 같이 잔소리를 할 수도 없다.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가장으로서 품위가 아니라 하지만 마구 새고 있는 에너지를 방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에너지절약에 솔선수범합시다.’란 표어를 방문마다 붙여 놓아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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