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육통이 와도 좋다
태풍 너구리가 접근하고 있다. 일본열도로 빠져 나갈 것이라 예상하지만 하늘이 검게 변한 것을 보면 그 위력이 대단한 것 같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냉방기 옆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애어른 할 것 없이 웃옷을 들어 올려 찬바람을 들여보내고 있다. 실외기 근처에는 식물이 자랄 수가 없다. 연일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으니 어느 식물인들 온전하겠는가. 작년과 달리 냉방기 가동시간이 길어진 것을 보면 전력사정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주말 큰 산을 다녀온 이래로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밀려오는 통증을 감당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한다. 평지는 그렇다 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경우에는 그 고통이 심해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그날 비가 몹시 내렸었다. 포기 할까 하다가 오기로 정상까지 정복한 것이 화근이다. 맑은 날 산행도 힘든 것인데 비바람을 맞아 가며 그 높은 곳을 올랐으니 근육이 온전할 리가 없다.
이 고통을 아내와 함께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 아내는 일층에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고통이 덜한데 난 오르고 내리는 곳이 많다. 멋모르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나도 몰래 비명 소리를 지르고 만다. 엉거주춤 내려가는 폼이 로봇과 흡사하다. 누가 본다면 이상타 여길 것이다. 사람이 눈에 띄면 멈추어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다. 보통 이삼일 지나면 통증이 가라 않는데 이번 은 첫날과 다름이 없다.
잠자리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자다가 아내의 다리위에 턱하니 걸치기라도 하면 비명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뜨거운 여름날 붙어 잘 일이 없다고 하지만 침대를 두 개 놓고 잘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퀸 사이즈라 해도 뒤척이다 보면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접근을 금하는 아내는 엄살이 대단하다. 당분간 신체접촉 없이 애정표현으로 만족해야 할 판이다.
이 고통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며칠 푹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먹고사는 것이 앞서다 보니 그럴 수도 없다. 가벼운 스킨십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다가 부부의 정이 멀어져 영원히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어찌 한단 말인가.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많다고 자부하는 나인데, 사랑 없이 몇 십 년을 산다는 것은 근육통을 능가하는 고통의 연속일 것이다. 고통이여 어서 물러가라.
“이렇게 고통이 심한데 다음에 또 큰 산에 갈 것인가.” 예전엔 등산 가자하면 힘들게 무엇 하러 올라 가냐고 반문했던 아내가 흔쾌히 따라 나선다고 한다. 운동의 묘미를 터득한 것 같다. 자전거를 타면서 탄탄해진 다리는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혔고 동해바다 물결처럼 출렁이던 뱃살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운동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한 나의 말에 수긍이 가는 것 같다.
요즈음 아내는 체중계에 올라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많이 내려간 수치에 감동했는지 내가 있을 때면 꼭 저울에 올라가 어쩔 줄 몰라 한다. 자랑하고 싶은 아내는 “이리 와서 수치 좀 보세요.” 하며 손을 흔든다. 저울에 올라갈 때마다 눈금을 볼까봐 잽싸게 내려오곤 했었다. 아내는 20년 가까이 늘어만 가던 체중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작아졌다는 말에 신이 난 아내는 식이요법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덤으로 얻어먹는 나 역시 슬림해질 날이 머지않았다. 여름휴가 때 ‘대청봉’을 오르자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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