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둠벙

말까시 2014. 5. 16. 17:17

 

 

◇ 생명수를 간직하고 마을 찬치를 벌일 수 있게 한 둠벙

 

경지정리가 되지 않은 골짜기 천수답은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를 할 수 없다. 지금은 천수답이라 할지라도 지하수 관정을 뚫어 물 걱정을 하지 않는다. 가뭄이 극성이면 근심걱정으로 온 마을이 불안에 떤다. 몇날 며칠 비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다. 모내기가 늦어지면 소출이 적어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어떻게든 모내기는 해야 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기우제를 지내야 했을까. 사람들은 지혜를 모았다. 논 가장자리에 둠벙을 판 것이다. 둠벙이 있는 논은 그럭저럭 모내기를 할 수 있었다.

 

일하다가 목이 마를 때 둠벙은 질 좋은 식수를 제공한다. 지금처럼 보온병이 없었을 때 주전자에 물을 담아 밭에 놓아두면 금방 데워져 청량감이 떨어진다. 곳곳에 파놓은 둠벙은 시원한 물을 제공하여 목을 축일 수 있었고 세수를 하고 등목을 할 수 있었다. 한여름에 시원한 물을 어디서 맛본단 말인가. 이렇게 시원한 물로 어떻게 세수를 하고 목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둠벙은 항상 물이 철철 넘쳐흘렀다. 둠벙 주위에는 물이 차가워서 벼이삭이 잘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졸졸 흐르는 물은 벼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인 것이다.

 

동네에서 가까운 둠벙에 밤만 되면 아낙들이 목욕을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목욕탕이 없는 시골에서 목욕을 할 수 있는 장소는 흔치않다. 하천까지 나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한다. 지금이야 처녀총각들이 다 사라졌지만 그 당시 시골은 저녁마다 시끌벅적 데이트 하는 소리로 진동을 했다. 몰래하는 데이트는 치안이 뒷받침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둑놈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어두운 밤길을 여자의 몸으로 걸어서 하천까지 나가 목욕을 한다는 것은 보통 배짱이 아니고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둠벙은 아낙들의 전용목욕탕이 되어 저녁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지금은 산골까지 농지정리가 되어 다 없어지고 말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둠벙에 있는 물을 퍼냈다. 두레박으로 퍼서는 몇날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사람들은 도르래를 이용하여 큰 깡통으로 물을 폈다. 바닥이 보이면 가벼운 사람이 둠벙 안으로 들어간다. 바닥을 호미로 파 일구어나가면 미꾸라지를 비롯하여 붕어, 우렁이, 물방개 등 무수히 많은 물고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퍼 담기만 하면 된다. 좁은 둠벙 안에서 오랫동안 자라온 물고기들은 토실토실 살이 올라 있다. 손가락 굵기의 커다란 미꾸라지도 부지기수다. 살이 통통 올라 뱃가죽이 누렇다. 그렇게 잡아 올린 물고기는 양동이로 하나 가득했다. 잠시 후 동네 찬치가 벌어진다.

 

미꾸라지는 매운탕을 끓이고 붕어는 배를 따고 내장을 발라내어 고추장에 버무려 생으로 먹었다. 간디스토마에 감염되면 고생한다는 말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어른들은 붕어무침을 좋아했다. 생으로 씹어 먹는 맛이 고소하다며 연거푸 막걸리를 비우곤 했다. 아이들은 매운탕을 먹었지 붕어 무침은 먹지 않았다. 취기가 오르면 꽹과리와 장고가 등장하여 신명나는 풍장치기가 시작된다. 온 마을 사람들이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놀다보면 술에 취해 나가떨어지는 어른들도 많았다. 이렇게 둠벙은 마을 잔치를 벌일 수 있게 하고 생명수를 제공했던 귀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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