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밥 먹는 날 소풍
신록의 계절 오월이 다가왔다. 짙어만 가는 푸름은 산을 덮었고 산은 숲으로 우거져 빈틈이 없다. 마른 나뭇잎은 젖어 거름이 되고 기름진 땅은 나무에 가지를 만들어 잎을 키웠다. 꽃들이 사라진 들판에 녹색은 파란 하늘과 맞닿아 눈부시다. 고지가 높은 능선의 작은 나무에도 새싹을 틔어 반짝인다. 잎을 갉아 먹고 사는 벌레들이 내는 소리에 그늘진 숲속은 스산하다. 붉게 핀 장미여 어서 오라.
오월이면 소풍을 간다. 날씨도 따스해서 나들이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꽃이 만발한 봄은 상춘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오월 소풍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꽃은 한군데 모여 피고지기를 반복하지만 녹색의 물결은 어디엔들 똑 같다. 숲속의 그늘은 쉬고 마시고 대화를 나누기 딱 좋은 곳이다. 산과 들 어디인들 구경거리가 없겠는가. 오월은 어느 곳을 가도 유원지고 볼 것이 많다.
시골학교의 소풍은 전교생이 한곳으로 간다. 작은 학교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주로 김밥을 싸갔다. 지금처럼 가지런히 썰어 도시락에 담아 가는 것이 아니고 통김 그대로 말아 보자기에 담아 갔다. 계란이라도 삶아오는 아이들은 일부에 불과 했다. 소풍갈 때면 약간의 용돈을 준다. 콜라 사이다 한 병을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다. 그것도 좀 여유 있는 집안에 있는 아이들이 가능 한 것이다. 대부분 김밥을 싸오는 것으로 준비는 끝난다.
소풍가서 하는 일이라곤 잠시 게임을 하고 보불 찾기를 한 다음 장기자랑 후 점심을 먹는 것으로 끝난다. 걸어서 가야하고 걸어서 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오래 머물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보통 이삼십 리나 되는 거리를 걷다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우물이 식수원이기 때문에 목이 타도 어데 물을 마실 곳이 마땅찮다. 대열에서 이탈 개인행동을 했다가는 즐거운 소풍날 몽둥이찜질을 받아야 한다.
삼삼오오 모여 김밥을 손에 들고 입으로 물어뜯어 먹어야 한다. 그 당시 칼로 써는 방법을 몰랐던 것인가. 하나같이 입에 물고 뜯어 먹었다. 도시락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모양을 낸다는 것은 사치다. 도시락 반찬이라야 늘 김치이고 가끔 멸치 볶음이라도 싸준다면 그날은 행운인 것이다. 계란을 붙여 싸가지고 오는 아이들은 없었다. 중학교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식품이었던 것이다.
소풍가는 장소에 도착하면 아이스케이크와 음료수 장사가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얼음과자는 지금처럼 다양한 것이 아니고 팥을 갈아 설탕에 버무려 얼린 것이 전부였다. 걸어오느라 목이 탄 아이들은 얼음과자를 주로 사먹었다. 그것도 용돈이라도 받아 온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빈손으로 온 아이들은 김밥으로 족해야 했고 멀뚱멀뚱 쳐다봐야만 했다. 녹아떨어지는 한 방울이라도 받아먹고 싶은 욕망이 굴뚝같았다. 야속하게도 한입베어 먹을 수 있는 아량을 베푸는 아이들은 없었다.
엄마 아버지들도 나들이를 갔다. 엄마들이 노는 곳에는 장고가 있었다. 지금처럼 음향기계가 발달하지 못한 그 시절에 장단을 맞추는 것은 장고가 유일했다. 그늘나무 아래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늙어지면 못노나니 아무렴 그렇고말고~~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기화자 좋구나 차차차. 아나 방청 아나 방청 아니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정확한 가사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늙어 힘없으니 젊었을 때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나들이 때마다 엄마들은 장고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를 외치며 고단한 농부의 한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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