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공포
홀라당 벗고 저수지에 뛰어 들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난 물가에서 땅 집고 헤엄을 쳤다. 아이들은 깊은 곳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자유형 배영을 번갈아 가면서 저수지 중앙으로 헤엄쳐 나아갔다. 나도 용기를 냈다. 얼마가지 않았는데 숨이 차 멈추고 말았다. 발을 디뎠지만 땅이 다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구나.’ 공포가 엄습했다. 허우적대면 댈수록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물귀신이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물을 잔뜩 먹고 오르락내리락 몇 번인가 하다가 의식이 멀어져 갔다.
수영을 배우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에 뜨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스승이 없었다. 수영을 잘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왜 뜨는지 원리를 아는 아이들은 없었다. 몸에 힘을 빼고 허우적거리다 보면 언젠가 뜨면서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수많은 노력 끝에 물에 뜨는 내 몸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때 배운 개구리헤엄으로 멀리는 못가지만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동네 앞 개울가에는 사시사철 물이 흘렀다. 바닥이 들여다 보일정도로 깨끗했다. 여름철에는 그곳이 물놀이 장소이며 놀이터였다.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면서 놀던 곳도 개울가이다. 물장구치다가 지치면 모래성을 쌓으며 소꿉장난도 했다.
수영복이 없었다. 반바지 차림의 아이들은 홀라당 벗고 물놀이를 했다. 여자아이들도 스스럼없이 즐겼다. 고무신을 벗어 물을 퍼내 송사리도 잡았다. 고무신은 어항역할도 했다. 여름 내내 개울가에서 놀다 보면 얼굴을 비롯해서 온몸이 새까맣게 탄다. 등짝은 허물이 벗어지기를 몇 번 하다보면 아프리카 흑인처럼 검게 변한다. 구릿빛 얼굴은 눈동자만 하얗게 빛난다.
여름한철 물놀이에 재미를 붙여 놀다 보면 강인한 체력을 유지 할 수 있다. 시골 아이들은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공부는 뒷전이다. 하지만 자연을 벗 삼아 뛰어 놀다 보니 현장 학습은 톡톡히 했다.
개울가는 수심이 얕아 수영을 할 수가 없다. 더위를 식히며 물놀이 하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마을에서 오리정도 떨어진 곳 저수지에 가지 않으면 수영을 즐길 수가 없다. 아이들은 저수지에서 수영을 배우고 즐겼다. 고무다라를 가져가 보트대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여아들은 저수지에 가지 않았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여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섭기도 하고 두려워 감히 수영을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여아들은 동네 앞 개울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의식이 가몰해질 무렵 누군가 내손을 잡아끌었다. 이미 지쳐버린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수영을 잘하는 친구의 손에 이끌리어 물가에 나온 나는 배가 남산만 했다. 물을 토하기를 여러 번 하고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안도감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때 그 친구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무리지어 수영을 즐기다 보니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은 한명도 없었다. 그 아이들 모두는 도회지로 나와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역군이 되었다. 일 년에 한번 동창회를 갖는다. 지난 추억을 이야기 하다보면 배꼽을 잡고 웃어야 할 경우가 있다. 어찌나 웃기는지 눈물이 나기도 한다. “친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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