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면중인 엄마의 마음
고향의 들녘에 꽃들이 만발하고 녹색의 물결은 산위로 번지고 있다. 길가 옆 언덕에 늘어진 개나리는 노랗게 물들었고 저수지 가장자리 버들강아지는 보드라운 솜털이 자랑인 꽃을 피워 빛났다. 냉이는 꽃대를 높여 흰 꽃을 피웠다. 고들빼기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푸른 잎을 내밀어 모습을 드러냈다. 무논에 물이 들어가자 기계는 로터리치어 다듬고 사람들은 못자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봄은 시골구석구석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데 엄마의 마음은 아직도 한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고 세상이 어두워 탈출 겸 고향을 다녀왔다. 수도권을 벗어나자 빗방울이 차창을 때렸다. 가랑비다. 세차게 내렸으면 금방 사라질 먼지인데 역부족이다. 충청권에 이르자 제법 커진 빗방울은 지붕을 때려 소리를 냈다. 촉촉이 적시어진 고속도로는 달리는 차들로 몸살을 알았지만 나무들이 새싹을 돋우고 그 아래 잡초가 푸른색을 더하니 아스팔트에 녹색의 물결이 넘나들었다.
고향에 내리는 빗줄기는 굵었다. 도랑에 물이 흐르고 풀잎에 맺힌 빗방울은 곤두박질쳤다. 물기를 흠뻑 먹은 흙들은 작은 떡잎을 밀어 올렸다. 마당에 만들어 놓은 텃밭에는 떡잎들이 무수히 올라왔다. 담벼락 아래 웃자란 달래는 진녹색으로 변했다. 하루나 잎 속에서 낮잠을 즐기던 개구리는 인기척에 놀라 다라난다. 재래식 화장실에 쳐 놓은 거미줄은 걷고 또 걷어도 그 자리에 또 쳐놓았다.
비 내리는 고향은 고요했다. 빗소리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골목길은 적막하기만 했다. 빈집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키다리 나무는 지붕을 덮었다. 울타리는 넘어져 경계를 모호하게 했고 기와집은 기둥이 빠져 힘없이 주저앉았다. 소싯적 생명줄인 우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고 물을 간직했다. 물속에 하늘이 보였다. 해맑은 모습은 어디로 가고 주름진 얼굴만이 비쳤다. 작은 돌멩이가 만든 물결 파는 흉측한 얼굴을 문질러 버렸다. 사람하나 볼 수 없는 시골길은 가끔 날아가는 새들이 적막을 깰 뿐 하루 종일 조용했다.
저녁 만찬을 위해 고들빼기, 씀바귀, 달래를 캤다. 정구지도 낫으로 베어 준비했다. 조선간장에 고춧가루를 풀고 마늘과 생강을 찧어 양념을 만들었다. 참기름 한 방울과 식초를 넣어 새콤함과 고소함을 더했다. 푸성귀를 넣고 버무려 상차림을 했다. 봄나물의 진한 향은 구미를 당겼다. 하얀 쌀밥에 겉절이를 얹어 먹는 저녁은 색다른 맛을 냈다.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봄을 먹고 있다는 생각에 곡차가 생각났다. 그날 밤 잠자리는 포근하고 맑았다.
날카로운 분쇄기 칼날이 이빨을 대신하는 엄마는 외식을 하자는 권유에 극구 사양했다. 잇몸이 없어 틀니도 걸 수가 없다. 인플랜트는 더더욱 할 수가 없다. 거동이 불편하여 동내를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는 이 좋을 때 많이 먹으라 하면서 다녀오라 했다. “아니 되올 말씀입니다.” 가지 않겠다는 엄마를 부축하여 강변식당으로 모셨다. 지팡이에 의존하고 걷는 걸음은 위태로웠다.
자리를 잡고 불판에 고기를 구웠다. 이빨이 없는 엄마는 국물만을 드실 뿐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자식을 보면서 얼마나 얄미웠을까. 식사가 끝나는 동안 창가에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사람 구경 못하고 혼자만의 삶을 꾸려온 엄마는 비록 먹지는 못했지만 모처럼의 나들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홀로인 엄마를 뒤로 한 채 올 수밖에 없었다. “도착하는 대로 전화해라.” 하고 손을 흔드신다. 상경하는 내내 편치 않은 마음은 아내와 나의 대화를 한동안 멈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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