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자갈 속에 움튼 냉이

말까시 2014. 2. 26. 14:49

 

 

◇ 자갈 속에 움튼 냉이

 

 

▲ 냉이 캐는 아내

 

 

먼지는 둥지를 틀어 도심 속에 눌러 앉았다. 오라는 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감감 무소식이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고 눈을 크게 뜰 수가 없다. 방과 후 곧장 집으로 오지 않으면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초미세 먼지는 마스크를 착용해도 허사다. 호흡기를 통해 침투한 먼지는 기관지를 자극하여 기침을 유발하고 환자에게는 증상이 악화될 수가 있어 각별히 주의가 요구된다.

 

냉이는 대표적인 봄나물이다. 냉이의 향은 침샘을 자극하여 먹고 싶은 욕망을 배가 시킨다. 된장을 풀어 깨끗하게 씻은 냉이를 뿌리 채 넣고 한소끔 끓여내면 된장의 구수한 냄새와 냉이향이 어우러져 미각을 자극한다. 밥상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입맛이 없는 초봄에 미각을 자극하는데 냉이만큼 좋은 나물이 없다. 겨우내 김장김치에 질릴 무렵 파릇한 냉이의 이파리만 보아도 침이 샘솟는다.

 

재래시장에 나가보면 크기가 손바닥만 한 냉이가 소쿠리에 담겨져 있다. 노지에서 캐온 것은 아니다. 저렇게 클 수가 없다. 하우스에서 고농도 비료를 먹고 자란 것이다. 병충해 방지를 위해 농약이 뿌려질 수도 있다. 냄새를 맡아 보았다. 냉이 특유한 향기가 났다. 노지 냉이가 없어 비교는 할 수 없었지만 봄 냄새를 맡기에 충분했다. 한 봉지 사려다가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포기 했다.

 

겨울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시골의 들녘에는 가을에 말라비틀어진 잡초들이 그대로 있었다. 사이사이 겨울을 이기고 버틴 이름 모를 잡초들이 납작 엎드려 있었다. 밭에는 보리이삭이 파릇파릇 바람에 흔들렸다. 겨울동안 땅속에서 온기를 품고 견디어 초봄에 싹을 틔어 나온 것이다. 고랑과 고랑 사이에는 작은 잡초들이 보였다. 냉이를 찾아보았다. 없었다. 보리를 심기 위해 가을에 갈아엎어 땅속 깊이 숨은 것 같았다.

 

봄 향기를 찾아 산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왔다. 동네 어귀보다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산에는 아직 동토의 땅이었다. 비닐봉지와 칼을 들고 나물 캐러 나섰던 나와 아내는 빈손으로 가야 할 판이다. 어디서 냉이를 찾는단 말인가. 냉이를 캐기는 아직 이른 것인가. 소싯적 초봄에 들녁에 나가보면 냉이뿐만 아니라 벌금자리도 지척에 깔려 있었다. 한소쿠리 캐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농로를 따라 걸어 보았다. 자갈이 듬성듬성 보일뿐 냉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내의 예리한 눈은 자갈사이에 붙어 있는 잡초를 발견했다.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파리는 보라색이었지만 모습은 분명 냉이었다. 아직 새싹이 나온 것은 아니고 작년에 가을에 싹을 틔었던 것이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칼을 깊숙이 찔러 캐보았다. 코에 갔다가 냄새를 맡아 보았다. 진한 향기는 콧속을 파고들어 냉이임을 증명해주었다. 야호! 아내와 난 쾌재를 불렀다.

 

잎은 아주 작았지만 뿌리는 땅속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잎은 보잘것 없었지만 뿌리는 통통하고 길었다. 다져진 땅이고 깊숙이 박힌 뿌리는 칼로 캘 수가 없었다. 인근 농장에 걸려 있는 곡괭이를 이용하여 수월하게 캤다. 난 곡괭이로 땅을 파고 아내는 흙속에 숨어 있는 냉이를 골라냈다. 비닐봉지 한가득 캐고 나니 어깨가 아팠다. 해는 쨍쨍 내리쬐고 들녘은 포근했다. 나란히 걸어 집으로 가는 길은 가볍고 경쾌했다. 그날 저녁 향긋한 냉이 국으로 봄의 정취를 듬뿍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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