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씁쓸했던 설 명절

말까시 2014. 2. 5. 14:53

 

 

◇ 씁쓸했던 설 명절

 

“동네가 빈집이 점점 늘어만 간다. 마을 입구 이난이 엄마가 서울 가서 안 온지 한 달이 넘었다. 암이라나. 뭐라나 큰일이다.” 설 명절 시골에 갔을 때 엄마가 한 첫말이다. 시골에 갈 때마다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더 많다. 빈집도 문제지만 집집마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주류를 이루다 보니 뭐 한 가지 고장 나면 이만저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이 꼴 저 꼴 안 보려면 빨리 가야 하는데” 한숨을 내쉬는 엄마는 반쪽이 다 되었다.  

 

고향의 하늘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산과 들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변하기도 하지만 인위적인 변화도 상당하다. 예전에는 몇 십 년이 흘러도 그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다보니 초가지붕이 헐리고 슬레이트가 올려졌다. 잘사는 집이야 기와가 올려 졌지만 보기 드문 현상이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집들은 누구나 대동소이했다. 부엌, 안방, 윗방이 전부였다. 일자집말이다. 이렇던 주거공간이 평수가 늘면서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 도시 못지않은 주거공간을 만들어 잘살고 있다.

 

빈집을 매입하여 별장처럼 짓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외지인이 들어와 둥지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시골 분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것처럼 보여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담벼락 밑에 옷 나무가 있었는데 베어져 있었다. 이웃집에 들어온 외지인이 옷이 오른다는 이유로 벨 것을 요구하여 자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담벼락 옆으로 오솔길이 있었는데 그것도 폐쇄해버렸다. 텃밭에 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따뜻한 온정이 넘쳐흘렀던 아름다운 마을이 외지인이 늘면서 싸늘한 냉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외지인은 젊고 똑똑한 반면 토착민은 팔순 노인들이니 애초부터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바랄 수 없다. 사소한 것도 이의를 제기하여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도시인들의 메마른 정서에 토착민들은 속병을 앓고 있다. 얼마 안가면 외지인들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성씨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면 의견충돌이 많아진다. 동네 발전을 위하여 의견을 합치는 것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사촌, 오촌이 모여 살던 옛날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웃어른이 한마디 하면 좀 그릇되어도 일산분란하게 움직였다. 일가친척이니 가능한 일이다. 시골도 도시처럼 삭막한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뒷동산 비탈진 밭들은 잡풀이 말라 흙을 덮고 있었다. 아무것도 심지 않아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랐던 것이다. 팔순 노인들이 경작을 할 수가 없다. 겨우 밥을 해먹는 정도이며 노인정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이다. 빈 땅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아버지가 보리쌀 한가마니 주고 산 뒷밭은 둑이 무너지고 잡초가 무성하여 들어갈 수 없이 황폐해졌다. 고구마도 심고 옥수수도 수확하여 귀중한 식량을 재공 했던 소중한 땅이 산으로 바뀌어 버렸다. 가까이 만 있어도 옥토로 탈바꿈 할 수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웃집 아저씨가 건강이 좋지 않아 논농사를 지어줄 수가 수 없다고 한다. 잘못하면 그대로 묵힐까 겁난다.

 

설 명절이 좋긴 하지만 그것은 어렸을 적 일이다. 오고가는 길도 힘들고 음식 장만하는데 뿔이 난 며느리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소화불량으로 약국만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많이 먹어서 탈이 나는 것이 아니다. 명절에 대한 부담감이 짓눌리어 탈이 나는 것이다. 계속하여 이어갈 아름다운 전통인데 왠지 반갑지가 않아진다. 명절이 없다면 형제간에도 얼굴볼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부모가 있어 내가 있고 또한 자식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안 본다 해도 명절이 있어 그나마 얼굴 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명절이 지나고 사흘이 흘렀다. 더부룩했던 속이 편해지면서 밝아지는 며느리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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