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벌었다.
날이면 날마다 하늘은 회색빛 구름으로 드리워져 있다. 해가 잠시 비추었다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후텁지근한 날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바람이 불다가가 멈춰버리면 턱밑의 끈적임은 오만상을 쓰게 한다. 어디선가 날아온 파리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며 괴롭힌다. 손바닥으로 내리쳐보지만 잘도 피한다. 뜨거운 도시를 버리고 떠난 피서객들은 산과 들이 주는 시원함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떠나고 싶은 욕망이 용솟음친다.
냉장고문짝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냉동실에 고드름이 맺혔다. 어디가 문제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상단경첩에 당기는 힘이 무력해졌다. 오랫동안 열고 닫음이 반복되면서 내장되어 있는 용수철이 망가진 것이다. 용수철만 갈아 끼우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만 경첩자체가 완제품으로 통째로 갈지 않으면 안 되었다. 8년 정도밖에 쓰지 않은 냉장고인데 경첩이 쉽게 망가지다니 좀 어이가 없었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정을 애기 하니 재료비와 출장비, 공임 비를 합해서 오만원정도 들것이라 했다. 경첩하나 가는데 오만원은 너무나 비싸지 않은가. 순수재료비는 2만원이라 한다. 일단서비스 신청을 보류하고 경첩만 주문했다.
다음날 서비스센터 부품코너에서 경첩을 사왔다.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어 냉장고 문짝을 떼어냈다. 문짝 하나 떼어내는데 워낙 나사가 많아 상당한 시간을 공들여야 했다. 문짝은 단열조치를 두껍게 해서인지 몰라도 무척이나 무거웠다. 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 사온 경첩을 문짝에 부착했다. 냉장고본체에 연결하려 했지만 무게가 있어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책으로 받침대를 만들어 시도해보았지만 경첩의 구멍과 본체를 연결하는 부분이 어긋나 좀처럼 나사를 조일수가 없었다.
한참을 낑낑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나사를 조이려 했지만 자꾸만 움직이는 문짝 때문에 구멍이 어긋나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못 잡아” 냅다 소리를 질렀다. 기분이 상했는지 궁시랑 거린 아내는 되받아 친다. “서비스신청을 하면 편할 것인데 하지도 못하면서며 생고생 할게 뭐야” 하고는 표정을 구겼다. 한 푼이라도 벌고자 손수 수리를 하는 수고에 감사하다는 말은 못할망정 무시하는 처사에 몹시 기분이 나빴다. “성인군자인 내가 참아야지 누가 참으랴.” 군소리 없이 한참을 씨름 한 끝에 문짝을 달고 여닫기를 시험했다. 대 성공이다. 그제야 아내는 빙그레 웃으며 “대단한데 저녁밥 맛있게 해줄 테니 얼른 씻고 기다리라”고 했다.
기술자들이야 금방 수리하겠지만 복잡하게 숨어 있는 나사를 찾아 풀고 다시 조이기를 반복해서 수리를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재료비 2만원, 출장비 1만원 공임비 2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총액이 5만원이다. 재료비를 빼면 3만원을 번 샘이다. 수리하는 과정에서 경첩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었고 문짝이 생각보다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이 얼마나 큰 수확인가. “쪼그리고 앉아 땀을 흘리며 고생하지 말고 다음부터는 서비스를 받으라.”고 하는 아내의 주장에 일침을 가했다. 할 수 있으면 해야지 낭비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날 저녁, 한정식으로 차린 풍성한 먹거리로 지친 몸에 원기를 불어 넣었다.
|
'삶의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귀 그놈은 위대했다. (0) | 2013.09.05 |
---|---|
아들생일날 벌어진 소동 (0) | 2013.08.16 |
비바램 (0) | 2013.07.02 |
무더운 여름날 아침 스케치 (0) | 2013.06.24 |
빼앗긴 내 사랑 (0) | 2013.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