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귀 그놈은 위대했다.
청량리는 70년대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런 거리지만 고풍스런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가판대가 갈 길을 방해했지만 오히려 볼 것이 많아 싫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에 비하여 간판의 조명은 휘황찬란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먹거리 골목에는 주당들이 내질러대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족발, 통닭, 부침개, 돼지머리 수육, 닭발 등이 눈길을 멈추게 하고 특이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여 식욕을 당겼다. 청량리는 시골 읍내 장터마냥 포근했다.
아귀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대궐처럼 넓었다. 삼삼오오 술을 마시는 손님들의 모습은 시골스러웠다. 배가 두둑하게 나온 사장님의 풍채는 조폭을 연상케 했지만 얼굴은 동안이었고 마음은 비단결이었다. 술값을 할인해주고 소주 한 병을 덤으로 주는 사장님의 넓으신 마음은 식당 안을 훈훈하게 했다. 서울깍쟁이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자리를 뜰 때까지 이어진 포근함은 술맛을 달달하게 했다.
아귀회가 나오기 전에 밑반찬으로 소주를 연거푸 비웠다. 모두들 술이 고팠는지 잔을 채우자마자 비웠다. 빈속에 술이 들어가니 속이 간질간질 찌릿하여 얼굴을 찡그리는 여인들의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잠시 황홀감에 빠졌다. 맑고 깨끗한 소주는 투명하기가 유리알처럼 영롱했다. 지하 700m암반수를 끌어 올려 대나무 숯으로 걸러 만든 소주는 거침없이 넘어 갔다. 누가 술을 만들었을까. 위대한 발명이 아닐 수가 없다.
드디어 아귀회가 나왔다. 꼬리에서부터 일부분만 회를 뜰 수 있어 한 마리 해봤자 얼마 되지 않았다. 순두부처럼 하얀 아귀간을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고소했다. 한번 씹었지만 술술 녹아 저절로 목구멍으로 내려갔다. 고소한 맛에 반하여 쟁탈전이 벌어졌다. 약이 된다는 구슬처럼 생긴 쓸게도 먹어 보았다. 입안에 맴도는 쓴맛의 여운은 오래오래 머물렀다. 꼬들꼬들하고 쫄깃한 아귀회와 함께 술병이 늘어갔다. 빈병이 더해질수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옆 테이블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목덜미에 단풍이 들어 웃고 즐기는 사이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맑은탕이 나왔다. 팽이 버섯과 야채가 듬뿍 담겨진 커다란 냄비는 열을 받자마자 국물을 우려냈다. 후루룩 마셔보았다. 시원한 맛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날까. 맛에 감응되어 터져 나오는 여인의 소리는 잠자고 있는 말초 신경을 자극했다. 흐물거리는 살점은 소주를 마구 당기게 했다. 소주병을 일렬로 늘어놓으니 탁자모서리를 가득 채웠다.
바람 끝이 차가웠다. 늦은 시각이지만 청량리 거리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점포마다 술병을 비우는 주당들은 목소리 높여 존재감을 과시했다. 화려한 불빛아래 야밤을 즐기는 올빼미들의 활동이 커짐에 따라 보도는 비좁았다. 술기운이 완연한 사람들의 행동은 장군이 된 것처럼 고성방가를 일삼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찬바람이 목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뜨거운 술기운이 확 달아나면서 세상의 빛이 총천연색으로 보였다. 청량리의 밤풍경은 멋졌다. 모처럼 기분이 상기된 상태에서 귀가를 종용하는 명령은 없었다. 황금빛 맥주를 맛을 본 후 아리딸딸해서 바퀴달린 것들에 인도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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