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당신의 향기를 맡고 싶다.

말까시 2011. 2. 17. 09:44

 

 

◆ 당신의 향기를 맡고 싶다.

 

수은주가 영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해가 들지 않는 골목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지만 냉기는 이미 빠져 나간 것 같다. 아파트 우수 관을 지날 때면 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조금씩 녹아 물줄기를 만든 것이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어깨를 움츠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 중랑천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을 보니 꽃피는 봄이 저만치 오기는 왔는가 보다.

 

거실에서 자고 있던 아내가 새벽되어서야 안방에 들어오면서 당신의 향기를 맡고 싶다고 했다.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아내를 다정하게 맞이했지만 평소와 다른 행동에 좀 의아했다. 이 무순 뚱딴지같은 소린가. 주말부부도 아니고 장기 출장을 갔다 온 것도 아닌데 나의 향기를 맡고 싶다니 아내에게 무슨 변화가 온 것인가. 이해 할 수 없는 아내의 말 한마디에 만감이 교차되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관심했단 말인가. 사실 살갑게 대한 것이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다.

 

신혼시절 아내가 하는 행동, 음식 무엇이든 다 좋았다.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밖을 나다니는 것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더 좋았다. 일방적이기 보다 모든 것을 상의 하고 결정하여 실천에 옮겼다. 시장도 같이 가고 음식을 할 때면 서로 도와 가면서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맛은 꿀맛이었다. 이제 20여년을 살다보니 신비감도 없고 부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드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모든 것이 좋았던 달콤한 시절은 이미 가고 없다. 서로에 대한 관심도 멀어져 한 지붕에 살아도 어디서 어떻게 자는지 관심 밖이다. 자다가 목이 말라 거실에 나와 냉장고 문을 열다가 발에 채여 비명을 지르는 앙칼진 목소리에 아내의 존재를 확인할 수가 있다. 안방의 개념도 사라진지 오래다. 무성했던 머리카락이 하나둘 날 버리고 떠났듯이 부부애도 이미 내 몸에서 다 빠져 나갔는지 모른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고 있다. 남편의 육신에서는 전혀 봄기운을 느끼지 못한 것일까? 따뜻한 말 한마디로 겨울잠에 빠져 있는 육체를 팔딱거리는 활어처럼 만들어 볼 야심찬 계획을 세웠단 말인가. 여름에는 덥다고 떨어지고 겨울에는 안방보다 거실바닥이 찜질방 같다면서 침대를 멀리한 아내의 마음에 죄책감이 든 것일까. 하긴 얼마 전 콜레스테롤 제거에 탁월하다는 건강식품을 사왔다. 매일아침 혈압약과 함께 두 알씩 먹고 있다. 아내가 신체적 변화를 감지한 것이 분명하다. 이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약물요법으로 관리를 해서 오래도록 독하게 부려먹을 심상이라면 큰일이다.

 

다정다감한 말도 좋지만 보양식이 중요한 우리들의 나이이다. 기력이 빠져 나간 빈 공간에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한번 발생한 성인병은 치유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아니 죽을 때까지 지니고 살아가야만 하는 고통의 연속일 수도 있다. 음식조절과 운동을 병행하여 관리 하지 않으면 언제 고꾸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삶에 있어서 변화, 참 좋은 현상이다. 그럼 아내가...? 오늘 저녁 만찬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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