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에 솟아 오른 “하얀거탑”
하얀 사각건물 속에 자리한 로마는 포근하고 아늑했다. 시흥대로 사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로마는 이색적 분위기보다는 덩치 큰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했다. 지나가는 불빛과 건물에서 쏟아지는 네온에 사각의 모습을 드러냈지만 화려함은 없었다. 어둠이 짓게 깔린 로마의 밤거리는 시커먼 그림자만이 거리를 메웠다. 마음을 재촉하여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단숨에 7층에 멈춘 승강기는 뻥튀기를 토해내듯 나를 밀어냈다.
뜨거운 기운이 확 밀려왔다. 음악과 조명이 흐르는 홀 안은 아늑함이 역력했다. 약간은 설렘도 있었지만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면서 진정되었다. 모양새 없었던 겉 보습과는 달리 로마의 한복판은 가을 단풍처럼 화려했다. 먼저 온 친구들은 한 잔술에 도취되어 세상을 평정한 듯 언성이 높았다. 아직은 초저녁인데 무엇이 이렇게 친구들을 빠르게 취하게 만들었을까. 다정다감하게 던지는 말 한마디에 우린 다 같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비웠던 것이다.
빈자리가 하나씩 채워지면서 달구어진 홀 안에는 술잔이 날아다녔다. 쏟다가 흘리고 마시다가 흘린 물방울이 바지와 스커트를 적시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입술을 적시고 그것이 다시 목구멍을 자극하여 오장육부를 흐를 때의 만족감은 바로 이 자리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무형의 천연기념물인 것이다.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폭소를 자아내고 부딪치는 술잔에서 튀어나오는 용기는 남과여의 간격을 좁혀 갔다.
공식행사가 끝나고 여흥의 시간이 되자 호랑이들은 자리를 번갈아 순회공연을 했다. 차가운 영하의 날씨와는 달리 홀 안은 이미 용광로가 다 되었다. 뜨거운 난로가 없어도 친구와 친구들이 흔들어대는 몸짓에 달구어진 공기는 겉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게 만들었다. 술기운에 달구어진 모습과 모습들은 아름다움에 극치였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손잡고 춤을 추는 친구들의 손끝에는 땀방울이 맺히어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밤이 깊어갈 수록 로마의 감옥에 가친 호랑이들은 탈출할 생각을 잊고 있었다. 무아의 지경에 빠진 친구들의 야한 재롱은 시선을 한곳으로 모으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프로는 아니지만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선은 파도를 만들어 가슴을 철석 때렸다. 지칠 만도 한데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와 춤은 다시 에너지를 만들어 친구들을 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대중교통은 이미 끊어지고 없었다. 그러나 불안한 기색은 찾아보려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한 감동은 너와 내가 누에고치 안의 좁은 공간에 들어앉아 있는 것도 모르게 하였다.
정모 하는 날, 하루 전 어두운 밤에 아무도 모르게 하얀 눈송이가 다녀갔었다. 그것에 걸맞게 로마의 건물도 하얀 색이었다. 조명아래 뛰어노는 친구들의 얼굴색 역시 하얀색이었다. 특히, 여친들의 찰랑이는 머릿결은 검은색이었지만 망막에 맺힌 상은 하얀 빛이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무리가 되어 만들어내는 형상은 또 하나의 흰색을 창조하고 말았다. 좋은 날 많은 친구들이 모여 쌓아놓은 하얀거탑은 우리들을 지켜주는 영원한 철옹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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