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보았니? 첫눈

말까시 2010. 11. 9. 15:35

 

 

◇ 보았니? 첫눈

 

  

 

어제 밤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어둠속에 흩날리는 눈을 볼 수는 없었으나 첫눈의 시늉은 낸 모양이다. 순간순간 창문을 내다보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는 하얀 눈의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밀어닥친 찬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하더니만 겨울의 상징인 눈이 하늘을 살포시 덮은 모양이다. 하얀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첫눈이 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의 모습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였다. 벌써 겨울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 왔나보다.

 

첫눈에 얽힌 사연을 말하라 하면 누구나 솜사탕처럼 포근한 추억을 꺼내놓고 미소를 짓곤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에 젖어들다 보면 한동안 침묵이 흐르면서 얼굴에 화색이 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옷깃을 여미고 그때 그 시절 풀어 놓은 이야기보따리에는 믿기 어려운 것들로 가득 차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거짓이 반을 넘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럴싸한 분위기에 웃고 웃으며 함께 한다.

 

아스팔트 거리엔 낙엽이 나 뒹굴고 달리는 차량의 꽁무니에서는 하얀 연기가 차가움을 전한다. 녹색의 물결이 넘실거리며 뜨거웠던 여름은 지나 간지 한참, 가을이온 것 같아 나가 보니 이미 오색의 물결은 낙하하고 없었다. 남쪽의 끝은 아직도 단풍놀이에 흥이 나 있다 하지만 첫눈을 시발로 멀어져 갈 것이다. 단풍놀이에 흥겨웠던 사람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함박눈이 최고다. 차가운 불빛사이로 쏟아 붓는 눈이야 말로 가을 단풍 못지않은 풍광을 만들어 낼 것이다.

 

우수수 떨어져 버린 낙엽은 도시의 골목을 다시 한 번 물들여 놓았다. 밟아 짓이겨 흉측 하지만 고운 빛깔만큼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눈 오고 비가 와서 탈색이 되어도 나무가 주는 온화함은 겨울 내내 차가움에 떨고 있는 뭇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해 줄 것이다. 마지막 청소부가 쓸어가 버리기 전까지 우리 곁에 머물러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는 단풍이야 말로 상막한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다.

 

9월 초에 몰아닥친 태풍 ‘곤파스’로 인하여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이 쓰러졌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 소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그중 태반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나무들도 많이 쓰러져 길을 막곤 했었다. 수많은 세월동안 비바람을 이겨 냈지만 보기 드문 강풍에 힘없이 넘어지고 말았다. 태풍이 없었다면 쓰러져간 나무들 역시 보기 좋은 단풍과 겨울 눈꽃송이가 잠시 머물러 멋진 모습을 선사 했을 것이다.

 

매서운 바람이 불면 불수록 내 몸에 붙어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바람 앞에 선 우뚝 선 나무들이 위대해 보인다.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목숨 걸고 시기하고 반목하는 인간에 비해서 묵묵히 자연에 순응하는 나무가 더 자랑스럽다. 나뭇잎 떨어져 눈이 앉고 지탱할 버팀목은 줄었지만 하얀 눈이 감싼 그 모습은 계절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비록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지 못한 억울함이 있어도 머지않아 다가올 연말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내 모습을 나무 꼭대기 삼차원 공간에 올려놓고 눈 내리는 밤 빙글빙글 돌려 본다면 새로운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