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마음을 정리해주는 벌초
처서가 지나면 모가지가 비틀어져 모기도 제구실을 못한다고 한다. 찬바람이 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원한 빗줄기는 날마다 대지를 적시고 있다. 장마 때 보다 더 지루하게 내리는 것 같다. 열대지방에만 있는 우기가 찾아 온 것일까. 그렇게 줄기차게 내리는 빗방울은 왜 더위를 가져가지 않는가. 약간은 온도가 내려 간듯하지만 아직도 더위는 우리주위를 맴돌고 있다. 습기 없는 뽀송한 바람은 언제 오려나. 창가에 스며드는 바람이 차가워 이불을 덮기까지는 8월이 지나고 새달이 와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터넷에 보면 벌써 벌초라는 단어가 종종 올라오곤 한다. 9월 초 주말이면 벌초를 위하여 떠나는 차량으로 전국의 고속도로는 몸살을 앓고 말 것이다. 언제부턴가 추석 당일보다 벌초를 하는 주말이 더 밀린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보면 피곤한 몸은 머리를 계속하여 아래로 숙이게 한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한집에 한명이상은 수도권에서 둥지를 틀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움직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연중행사이다. 고향을 떠난 자손들은 명절이 다가오기 전에 반드시 벌초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상을 뵐 면목도 없고 고향의 어른들한테 혼난다.
우리가 코 흘리며 마구 뛰어놀 때에는 벌초라는 말을 잘 들어보지 못했다. 언제 하는지도 몰랐다.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성묘 차 선산을 가보면 산 전체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집안 어른들이 모여 벌초를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어떻게 된 것인가. 바로 산지기가 있어 선산을 관리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땔감이 나무였던 그 시기에는 산과 들이 지금처럼 숲이 무성하지가 않았다. 잡풀도 베어 말리어 땔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자손들이 모여 직접 벌초를 하니 조상들은 더욱더 흡족해할 것이다.
벌초를 하는데 예전에는 낫으로 했다. 여러 명이 달라붙어도 산소 하나를 정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쪼그리고 앉아서 풀을 베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늘 하는 일이 아니고 일 년에 한번 하는 벌초는 도시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기계문명이 발달하다 보니 예초기가 나와 지금은 일순간에 해치워 버린다. 참 좋은 세상에 사는 것이다.
가늘게 뿜어져 나오는 엔진소리는 조용한 시골의 적막을 깨는데 충분하다. 동식물이 놀라 자빠진다. 날카로운 칼날은 풀만 베는 것이 아니고 풀숲에서 서식하는 각종 곤충들도 여지없이 날려 버린다. 동식물에게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에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에게 아픔을 주는 것은 필연인가. 미안함이 앞선다. 낫으로 하는 것보다 좀 거친 것이 흠이지만 예초기는 풀을 베는데 있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벌초를 끝마치고 선산을 둘러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봉군은 멀리서 보아도 윤곽이 뚜렷하다. 조상님들이 벌떡 일어나 봉군 주위를 돌아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기술이 좋고 나쁨이 아니고 직접 내가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은 평온하고 따뜻해진다. 머지않아 고향에서 호출이 올 것이다. 망설이지 말고 주저 없이 달려가 벌초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바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좀 힘들고 오고가는 여정이 장난이 아니지만 같이 한 벌초는 이 가을 우리가슴에 풍성한 선물을 안겨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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