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남한산성

말까시 2010. 5. 9. 15:52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남한산성'

 

 

▲ 성곽이 잘 보전되어 있는 남문 

 

산성역은 높았다. 그 모습 또한 시골스러웠다. 출구는 3개뿐인 단촐 한 역이었다. 고갯마루에 자리를 잡은 역은 수직갱이었다.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두 번의 에스컬레이터를 타야만했다.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 표정만큼은 여유만만 했다. 선거철이 다가왔는지 출구에는 명함을 돌리는 입후보자가 부단히 움직이고 있었다. 조용하기만 했던 역에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이다 보니 시끌벅적 했다. 산성역 주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친구들의 해 맑은 모습을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부러운 듯 지나가는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다. 바람이 잔잔해지고 햇살의 각이 높아질 무렵 산행은 시작되었다.

 

청량산은 산성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완만한 코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산행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초입부터 군락을 형성하여 길게 늘어진 벚꽃나무는 이파리가 제법 무성했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하얀 벚꽃을 볼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갖게 했다. 가다가 비탈길이 나왔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잠시 오르막이 있으면 또 내리막이 있어 땀이 날 틈을 주지 않았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분홍색을 자랑하는 진달래를 비롯하여 철쭉꽃들은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가끔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은 두통을 가시게 했다. 숲속의 터널은 남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 남문에서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

 

남문에서 시작하여 수어장대까지의 성곽을 따라 가는 길은 급경사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어 격한 숨소리를 내지 않고는 오를 수가 없었다. 앞에 가는 사람과 뒤에 가는 사람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숨이 머질 것만 같은 상황이 거듭되었지만 가볍게 손을 잡아 이끌어주는 친구가 있었기에 전진을 할 수가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좀처럼 보기 드문 맑은 날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 숲과 펼쳐진 들판이 시원스럽게 눈에 들어 왔다. 회색빛 건물들은 남한산성 바로 밑에까지 침투를 하고 있었다. 조금씩 잠식되어가는 녹지대가 빌딩 숲으로 변해가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숲으로 둘러싸인 남한산성의 한가운데에는 먹고 마시는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 옛날 작은 촌락이 형성되어 농사지었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소비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성곽을 따라 가는 길은 넉넉한 여유를 즐기기에 좋았지만 산성의 바로 아래 중앙에는 번잡하고 밀려있는 차량들로 뜨거웠다.

 

성곽을 한 바퀴 다 돌라 했지만 서산마루에 가까워지는 해로 인해 하산해야 했다. 하산하는 길은 걸어서 갈수가 없었다. 이미 다 소진해 버린 에너지는 더 이상의 걸음을 용납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야만 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하산하는 길은 또 다른 풍광을 선사했다. 아찔한 절벽도 보였다. 아슬아슬한 산길은 버스를 느림보로 만들었다. 하산의 끝자락에 도착했을 때 약간의 긴장을 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친구도 있었다.

 

남한산성의 명물인 ‘닭죽촌’에 도착해 보니 뒤풀이에 참석코자하는 친구들이 이미 와 있었다. 허기진 배에 고소한 닭고기와 죽이 들어가고 나니 힘이 솟았다. 덧 붙여 마신 소맥은 뜨거운 열기를 일순간에 앗아 갔다. 잘 익은 열무김치는 미각을 더욱더 자극했다. 점점 부풀어 오른 배는 등산복을 비집고 겉으로 들어났다. 아랑곳하지 않는 친구들은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해살에 달구어진 얼굴에 한 잔술이 더해지면서 부드럽게 들어나는 분홍빛은 친구들의 가슴을 마구 뛰게 했다. 건강하다는 증거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배와 가슴이 충만했을 때 뒤풀이는 끝났다. 어둠이 내린 산성역으로 가는 길은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