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일그러진 고향의 봄

말까시 2010. 4. 12. 17:28

 

 

◇ 일그러진 고향의 봄(2010. 4. 10. 고향방문)

 

 

 

▲ 버들강아지에 매달려 짝짓기를 하고 있는 무당벌레

 

 

고향은 아직도 한겨울이었다. 사철나무를 빼고는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지 않았다. 햇볕이 잘든 언덕에 버들강아지만이 솜털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했던 소나무도 길고긴 차가움에 신음을 하고 있었다. 시골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해질 무렵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니 낮선 사람이 왔는가 보다. 고향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둔탁한 경운기 엔진 소리만이 시골의 적막감을 깨고 있었다.

 

바싹 말라버린 잔디는 작은 불씨라도 떨어진다면 금방이라도 불꽃을 내며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잔디 사이사이 돋아나는 녹색의 작은 것들은 빛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가지는 흔들렸지만 앉아 있는 새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밭고랑에 널려 있던 비닐이 바람에 날리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누군가 밭둑을 태우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더워진 공기는 들판에 아지랑이를 만들어 냈다. 봄기운은 생명체에 힘을 불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일하는 누렁이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기계화되면서 더 이상 소는 농사일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우리에 갇혀 하루 종일 되새김질에 살을 찌워야만 하는 소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전염병이라도 돌라치면 일순간에 살처분 당하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고귀한 존재였던 누렁이들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고기 덩어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 시멘트포장이 잘된 평온한 시골 풍경

  

 

농가는 초가지붕이었다. 새마을 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슬레이트로 변했다.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은 빈집이 태반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허물어져 흉물로 변했다. 그렇게 쓸쓸하기만 했던 시골에 새로운 현대식 주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층으로 된 저택도 보였다. 도시화의 물결에 떠나버렸던 산업역군들이 흰머리를 휘날리며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은퇴 후의 삶을 조용한 시골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발동한 것이다. 요즈음 부쩍 외지인의 방문이 잦아진다고 한다.

 

비만 오면 질척이던 시골길은 시멘트 포장을 하여 새 단장을 했다. 산골 어귀에까지 차가 들락거릴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았다. 굴곡이 심한 길은 반듯하게 방향을 잡았다. 고개 마루는 산허리를 잘라내어 경사도를 완만하게 다져 놓았다. 일터로 가는 길은 걷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힘을 빌리어 움직일 수 있도록 잘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간간이 공장도 보인다. 조용하기만 했던 고향의 풍경은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공해로 무너지고 있었다. 숲속에 파묻혀 있어야 할 시골은 외지인의 횡포에 갈가리 찢어져 황토 흙을 들어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산과 들판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시골의 포근함과 정겨움은 달아나고 없었다. 무한정 보전할 수는 없겠지만 갈 때마다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에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인가. 조그마한 땅덩어리 다 파일구어 놓으면 후세엔 어찌 살란 말인가. 상처 난 절개지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잡초들이 있기에 고향의 정취는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