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움트는 부용산

말까시 2010. 3. 14. 20:37

 

 

◇ 움트는 부용산

 

지하철 1호선과 중앙선이 갈라지는 회기역은 말끔하게 단장되어 옛날의 직직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고는 하나 플랫폼에는 아직도 찬바람이 일렁이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산사람들은 몸을 움츠린 채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 5일제 근무를 시행한지 꽤나 되었지만 회기역에는 출근을 위한 비즈니스맨들이 계속하여 밀려들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희망만은 잃지 않은 듯 발걸음은 힘차보였다.

 

기차와 달리 전철은 그렇게 빨리 달리지 않았다. 차창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에 적당한 속도였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 왔건만 아직은 녹색의 물결을 볼 수가 없었다. 땅속 깊숙이 움을 트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듯 회색 빛 들판은 흔들리었다. 수도권이라 그런지 비닐하우스가 무척이나 많았다. 본격적인 일철이 아니라 들판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전철은 팔당역에서 산사람들을 거의 다 토해냈다. 아마도 운길산을 가기 위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차창너머로 보이는 운길산은 지난 번 내린 눈이 녹지 않아 하얀색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강을 건너는 전철은 한강양안에 펼쳐진 풍광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먹이 사냥을 위한 새들의 날개 짓은 잔잔한 강물에 물결을 일으키게 했다. 저 멀리 보이는 앙상한 가지에 센바람이 지나가는지 파르르 떨었다.

 

우린 운서역에 내리어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부용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한적한 시골 오솔길은 등산복 차림의 사람만이 오갈뿐 개미 한 마리 없이 적막감이 흐르고 있었다. 밭 언저리에서 봄나물을 캐는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땅을 비집고 올라온 냉이는 그윽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지금 땅 밑에는 싹을 트기위해 흙과 사투를 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 초입은 급경사였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겨울잠을 너무 길게 자버린 것이 문제였다. 여친의 입에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는 온산을 진동하게 했다. 저번에 내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전나무는 뿌리를 들어낸 채 넘어져 있었다. 한 두 그루가 아니었다. 수십 년 자란 나무가 저렇게 힘없이 넘어지다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급경사에 뿌리를 내리기에 힘이 부쳤나보다. 참으로 아까운 나무들이었다.

 

산은 아주 작았다. 하지만 능선은 아주 길었다. 담소를 나누며 걷기에 아주 좋은 산이었다. 쾌청한 날, 산 정상에서 펼쳐지는 한강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건물들은 선상의 도시를 연상케 했다. 강 속에 하늘이 있고 하늘에 강이 있는 듯 보이는 그림은 환상이었다.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를 펴고 간단한 시산제를 올리고 나서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값비싼 정보를 주고받았다.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친구의 건강정보는 참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곁들여 싸가지고 온 야관문(비수리나무로 담근 술)은 갈색 빛에서 나오는 향이 아주 좋았다. 한 잔술로 남친들은 모두 변강쇠가 되었다.

 

RV차에 여덟 명이 타고 상경하는 길은 죽음이었다. 비좁은 자리에 움직이지 못하여 다리에 쥐가 났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여친들의 비명소리는 싫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요상한 소리였다. 온몸이 성감대라는 한 친구는 상경하는 동안 참기 어려운 고통에 말초신경을 하나씩 제거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고생 끝에 회기역에 도착하여 뒤풀이에 합류한 친구들과 어둠이 내릴 때까지 음주가무를 즐겼다. 많은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점점 밝아지는 모습과 좋은 정보를 제공해준 친구들이 있어 즐거운 산행이 된 것 같다. 친구들아 고맙다.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그러진 고향의 봄  (0) 2010.04.12
봄 기운이 완연한 도봉산  (0) 2010.04.05
품안에 안긴 팔봉산  (0) 2009.11.15
돌기둥이 우뚝 솟은 수락산  (0) 2009.10.11
가을 예찬  (0) 2009.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