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예찬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와 도심 속에 파고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단풍이 들어야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가 있을 것인데 일 년 내내 회색빛 그대로 변함이 없으니 가을이란 계절이 주는 뽀송한 깃털의 촉감을 감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계절마다 부는 바람의 방향이 다르고 세기가 다르고 시원함이 다르다. 이제 습기 없는 시원한 바람만이 목 줄기를 타고 흐를 것이다. 끈적이는 여름에 부는 바람과는 천지간 차이다. 들에는 상쾌한 바람을 즐길 가장 좋은 날씨의 향연이 계속하여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가을은 아버지와 같은 든든한 계절이기도 하다. 봄에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고 자라서 가을에 결실을 맺어 곡간에 쌓아 놓으면 부러울 것이 없었던 것이 농경사회였다. 그것이 아버지들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 집안의 아버지인 가장의 노력여하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농경사회의 결실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량이었으며 생활용품을 구입 할 수 있는 도구였다. 또한 학습을 위하여 지불하는 돈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아버지! 아버지들이 만들어 놓은 가을들판에 곡식들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할 때면 고향의 하늘과 산, 그리고 뛰놀던 들판이 스쳐지나갑니다.”
시골, 그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벌떡벌떡 뛴다. 그곳에 있을 때는 사계절을 또렷하게 볼 수가 있고 느낄 수가 있었다. 차가움도 뜨거움도 싫지 않았다. 손발이 시리도록 차가운 들판에서 땅을 일구어 씨앗을 뿌리는 밭고랑 옆에 울면서 흙을 파먹고 자랐지만 아프지 않았다. 사시사철 자라나는 들판에서 얻은 것들을 스스럼없이 생식하고 구워먹은 것들이 뼈 속 깊숙이 자라 잡아 넘어져도 부러지지 않았다. 칼슘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우유를 먹고 자란 요즘 아이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골, 이곳에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 우리 몸을 항상 감싸고 있어 지탱해주고 있다. 열매가 맺는 가을에는 그 기운이 더해 바라만 보아도 힘이 솟구쳤다. 그래서 가을은 풍성하다고 말한다.
마당에는 옥수수가 익어 수염을 늘어뜨리고 있다. 그 아래 고구마는 땅을 비집고 나와 자주색 빛을 자랑한다. 담벼락을 덮어 버린 호박잎 사이로 늙은 호박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잎이 뾰족한 녹색 물결 사이로 커져버린 고추는 발갛게 구부려져 누가 따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앞마당 구석에 자리 잡은 가지는 끝이 뭉텅하면서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랐다. 처마에 매달려 있는 마늘은 수확한지 오래된 듯 푸른빛을 잃은 채 말라 비틀어져 있다. 뒤 마당 그늘진 곳에 자리 잡은 고들빼기는 줄기에 힘이 들어 꼿꼿하게 솟아 있다.
마당에 어둠이 내리었다. 빛이 사라지고 멀리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뜨럭을 비추고 있다. 하늘 높이 별빛이 반짝인다. 달도 보인다. 추석이 가까이 오는가 보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빛과 함께 마루 밑에서 울어 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것을 보니 가을은 절정에 올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두르지 않으면 가을을 만끽 할 수 없다. 단풍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 하나가 카페에 날아들었다. 산으로 가야한다. 보고 느껴야 한다. 그렇게 오색물결이 절정에 올랐을 때 남자의 얼굴은 구리 빛이 진해지면서 힘이 더해질 것이다. 가을이 좋다. 시골이 좋다. 그래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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