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은 포근하고 화려했다.”
고향의 봄은 따뜻했다. 아니 포근했다. 아무리 추워도 고향에만 안착하면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아마도 슬픔과 즐거움이 함께 녹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심이 묻어 있는 산과 들의 넉넉함에서 맛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고향의 포근함은 도시의 상막함에 매 말라 버린 현대인의 정서를 다시금 촉촉하게 적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고향의 색은 갈 때마다 새롭다. 떠나고 나면 그리움이 넘쳐나는 곳도 고향의 하늘과 땅이다. 고향,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곳이다.
마구 뛰어놀던 산과 들은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이도 변했다. 하지만 그 나무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 길 역시 더 넓어진 채로 포장되어 거기에 있었다. 산 높이 올라 내려다 본 모습은 약간의 상처가 보였으나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보노라면 마음은 벌써 동심으로 돌아가 무섭게 들녘을 저만치 달리고 있다.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아들어 눈을 비비게 할지라도 화가 나지 않는다. 잠시 눈물을 흘려 제거해 버리면 그만이다. 논과 밭에 뿌려놓은 거름에서 풍기는 냄새는 이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이내 고향의 향기로 바뀌어 코끝을 자극한다. 싫지가 않다.
들녘에 핀 야생화는 자기만의 독특한 색과 향기를 뿜어내며 벌들을 유혹한다. 바람에 흔들리어 꺾일 것만 같은 작은 새순의 녹색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눈의 피로를 느낄 수가 없다. 담장 옆 양지바른 언덕에 무성히 자란 잡초들은 천적이 없나 보다. 빼곡히 들어선 녹색의 푸른 물결은 다른 것에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듯 틈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곳의 작은 공간에 자리를 잡아 살짝 내밀어 피어있는 민들레꽃은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데 충분했다. 태양광을 받아 빛나는 노란색의 화려함은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산과 들은 화려한데 마을 풍경은 그리 밝지가 않다. 사람이 없다. 단지 노인들 몇 분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사라지고 새소리 짐승소리가 고향의 소리를 대신한다. 변화의 물결이 휩쓸고 간 고향의 사람들은 많이도 변했다. 옹기종기 모여 다정다감하게 살던 그때의 풋풋한 정은 신문화의 물결에 밀려 사라지고 없다.
도시로 가기를 포기하고 시골에 머물러 있는 젊은이들은 조선족의 횡포에 상처를 입고 원망도 많이 했다. 못난 것도 서러운데 같은 동포에 사기를 당하고 나니 삶의 의욕을 잃고 술이 주식이 되어 방황도 많이 했다. 조선족이 물러가고 필리핀에서 온 새색시들이 새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살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하여 지금 시골에는 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오래전에 사라져간 애 울음소리를 들을 날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고 했다. 음지가 양지 되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했다. 국제 곡물가격의 급등으로 미래에 식량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소리도 들린다. 앞으로의 일이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개발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의 고향 시골, 지금은 노인들뿐인 아주 상막한 곳이기는 하지만 먼 훗날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향의 산과 들에 있는 작은 돌, 풀 한포기라도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은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임을 명심하고 자자손손 마음 것 누릴 수 있도록 가꾸어 보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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