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임자 잃은 산딸기

말까시 2008. 7. 27. 21:26

 

◇ 임자 잃은 산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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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억수로 쏟아졌다. 하늘이 구멍이 난 듯 퍼 붓는 빗줄기는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잃게 할 정도로 그 위력은 대단했다. 빗줄기가 때리는 탕탕거리는 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무어라 이야기해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물 폭탄에 초토화 되다시피 한 그 속으로 가야만 한다. 우리들을 그 속으로 끓어 당기는 힘은 과연 무엇인가. 아무리 어렵고 험난한 길일지라도 앞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을 꺾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고향이 있기 때문이다.

 

해가 내리쬐는 청정한 날씨에도 장시간 운전을 하다보면 피로가 누적되어 파김치가 되곤 한다. 하물며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악천후 속에서 허우적대며 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기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단한 각오를 하고 복잡한 서울을 등지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미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속을 뚫고 수많은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주말나들이객과 피서인파가 한데 어우러져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빗방울은 일정치가 않았다. 철판을 뚫을 듯 거세게 내리다가도 잠시 가랑비로 변했다가 이내 물 폭탄을 투하하는 변덕스런 날씨가 반복되었다. 뒤 좌석에 앉아 있는 애들은 요란스런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다를 떨고 있다. 아내는 계속하여 조심운전을 주문한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낼라치면 가차 없이 치고 들어온다. 아내의 호통소리에 규정 속도를 초과 할 수가 없었다. 살붙이고 같이 한 삶이 십 수 년 되었지만 아직도 믿음이 모자란 구석이 있는가 보다.

 

수도권을 지나 충청권에 진입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에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했다. 이제부터 신나게 달리는 일만 남았다.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아 엔진회전수를 높였다. 엔진은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달려 단박에 고향 앞에 데려다 놓았다. 그렇게 넓기만 했던 길들은 무성히 자란 잡초가 점령하여 오솔길로 만들어 버렸다. 조심조심 시골길을 아주 저속으로 주행하며 산과 들을 감상했다. 저 들판 사이로 뛰놀며 유소년을 보냈던 그 속에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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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다” 아내의 외침에 잠시 차를 멈추고 탐스럽게 익은 딸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애들은 벌써 신이 나있었다.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먹는데 정신이 팔린 애들은 그 자리를 좀처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길옆언덕에 탐스럽게 익은 딸기를 아무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옛날 같았으면 익기도 전에 벌써 사라지고 없었을 텐데, 시골에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빈집이 태반이고 노인들만이 유령 같은 고향의 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나의 동심이 그대로 묻어 있는 기와집, 세월이 흘러 기와 자체가 부식이 되어 비가 오면 빗물이 스며들어 지붕을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와처럼 운치는 없었지만 개량지붕은 완벽했다. 겉보기와 달리 방과 부엌은 그대로였다. 빛바랜 책과 닳고 달은 농기구들, 정감이 넘치는 장독대는 가장자리가 허물어져 위태로웠지만 질그릇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된장만큼이나 구수했다. 집안 가득이 자리 잡은 푸성귀는 멀리 가지 않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아주 귀한 식량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담벼락 밑에 듬성듬성 자란 고들빼기, 씀바귀, 민들레 이런 것들은 아주 소중한 약초이며 웰-빙 식품으로 변한지 오래되었다.

 

고향은 갈 때마다 새롭다. 녹음이 우거진 파란색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함과 각종열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총천연색의 화려함에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다. 약간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실망했지만 한세대가 흐르면 살기 좋은 전원도시로 탈바꿈하지 않을까. 그렇게 위안을 하니 빈집 하나 둘, 그 속에 사람이 가득하여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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