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칼바람과 함께한 새해 소망

말까시 2008. 1. 2. 15:14
 

◇ 칼바람과 함께한 새해 소망 ◇


시민군 1만5천명이 겨울 산악훈련을 위하여 도봉산에 들어갔다. 군복은 하나 같이 검은 색으로 통일했다. 간간이 붉은색 상의를 입고 나타난 병사도 있었다. 그들은 여군이었다. 배낭의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내용물에 있어서는 거의 비슷했다. 하나 같이 배낭 옆에 긴 장대를 꽂아 저 높은 하늘에서 보면 최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정예부대로 착각할 정도로 용맹스러워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기 위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는 좁았다. 빼곡히 들어선 산사람들로 인하여 도시의 번화가를 방불케 했다. 대단한 군중이 한곳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간밤에 약간의 눈이 내렸다. 하지만 산으로 향하는 힘찬 발걸음에 앞에서 걸림돌은 되지 못했다. 갑작스런 기온급강하로 살을 애일 듯한 찬바람이 몰아쳐도 마음만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오직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움직이는 검은색의 대군은 가히 장관이었으며 마음은 하나였다.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능선의 바람은 그 세기가 한여름에 몰아치는 태풍이었다. 귀와 볼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매서운 날씨였지만 산사람들의 기계를 꺾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너와 나, 우리는 하나가 되어 밀어주고, 당겨주고, 먹여주고 가뿐 숨소리에 얼어붙은 입김까지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다. 서로 어우러져 즐거움만을 느낄 뿐이었다.   


개골창을 점령한 시민군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미리 조직을 구성하지 않았지만 산을 향하는 대열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1만 5천여 대군이 서로의 임무를 부여하지 않았는데도 능선과 계곡의 요새지를 점령한 이들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낙엽에 미끄러져 비명은 질렀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물이 얼어 목을 축이는데 어려웠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이었기에 갈증 또한 없었다.  


양지 바른 바위 사이 바람이 없는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점령하여 쉬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소리는 온 산으로 퍼져나갔다.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며 물 한 모금 나누어 마시고, 족발에 소주 한잔을 걸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비록 앙상한 가지만 남은 산모퉁이에서의 모임이었지만 그 놀이는 하나의 신선놀음이었다.


주섬주섬 싸온 음식을 꺼내보니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배를 채우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 금방 얼어붙었지만 따듯한 온정에 의하여 입속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렸다. 단지 냉각된 소주는 아무리 먹어도 온몸을 데우는데 한 참 모자랐다. 차라리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40도짜리 홍주를 가져오는 것인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정상은 바위였다. 세상은 하나였다. 저 멀리 사방팔방 보이는 것은 산과 산으로 연결된 하나의 땅이었다. 그곳에 난 한점의 작은 미물에 불과 했다. 별것도 아닌 것이 저 아래 땅에서 그리도 큰소리를 쳤단 말인가.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잠시 눈을 감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처음 시작은 아주 긴 시간이었지만 마지막에서 보면 너무나 빠른 한해였다. 새해 무엇이 나를 인도해줄지 모르지만 무자년 한해 무사무탈을 기원하고 해질 무렵 저 아래 땅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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