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그 곳에 가면 옛날이 보인다.

말까시 2007. 8. 14. 15:53
 

◇ 그곳에 가면 옛날이 보인다.


비속을 달렸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다. 평일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산천초목은 희미했다. 구름에 가려서 볼 수가 없었던 해님은 간간히 작은 틈을 비집고 햇살을 쏟아내곤 했다. 금방 비추고 사라진 해를 뒤로 하고 장대비가 유리창을 마구 때렸다. 쉴 새 없이 왕복운동을 하는 윈도브러시는 장대비를 잘라 내고 시야를 확보하는데 안간힘을 다했다. 빗줄기의 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조그마한 공간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전방에 보이는 것은 빗줄기 뿐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떠난다는 즐거움 앞에서 잠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쌩쌩 달리던 달구지들은 장대비에 놀라 비상등을 켜고 거북이걸음을 했다. 그렇게 어둡고 캄캄한 빗길을 달린 끝에 그곳에 도착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시골길 양옆에는 잡초들이 무성했다. 멀지 않은 옛날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는 아무쓸모 없는 잡초라도 귀한 존재였다. 자라기가 무섭게 퇴비, 소먹이 풀, 땔감 등으로 잘려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던 시골길이 이젠 몇몇 힘없는 노인들의 발걸음이 전부여서 그런지 길은 좁았다. 떠난 사람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곳의 나무와 돌에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약간 변형은 되었지만 그 자리에 대부분 그대로 있었다. 마르지 않은 샘물이 펑펑 솟았던 우물, 퍼마시지 않아 빛을 잃었지만 그대로의 모습으로 뚜껑이 덮인 채 거기에 있었다. 뚜껑을 열어 보았지만 캄캄 했다. 갑자기 개구리가 펄쩍 튀어 올라올까봐 그대로 덮어 버렸다.


마을은 흉측했다. 골목골목 어귀마다 무너진 담벼락이 널브러져 있다. 부실공사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마을은 크지만 빈집이 더 많았다. 한 세대 두세대 수십 년을 버텨오던 한옥들이 그 짧은 시간사이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사람의 기운이 사라지고 난 후 각종 미생물이 침투하여 일순간에 무너뜨린 것이다. 마당에는 잡초가 한길 가량 자라 있다. 흔적을 찾아 제치고 살폈다. 뒤 뜨락에 그대로 놓여 있는 흑백TV, 70년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김일선수의 박치기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외국선수의 모습에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치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프로레슬링이 서로 짜고 하는 경기라고 알려지면서 시들해 졌지만 그때는 인기가 대단했다. TV가 귀했던 그 시절 돈을 내고 본적도 있다. 뜨락 너머 부엌에는 아궁이도 보였다. 입구는 불에 그슬려 검은색을 띄었다. 아궁이에 불을 집혀 밥을 해먹던 그 무쇠 솥은 전혀 부식되지 않았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면은 매끄럽게 윤이 났다. 틈틈이 들기름으로 발랐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직도 옛날 그대로의 방식대로 살고 있었다.


도시에선 볼 수 없었던 모기장, 그 안에는 모기가 살지 않고 사람이 산다고 문제를 내며 깔깔거리고 놀던 때가 그물망에 그려졌다. 방은 좁았다. 대가족이 넓게 사용하던 방이 갑자기 작아진 것이다. 아니 내 몸이 커져버린 것이다. 집안은 떠들썩했다. 고요하기만 했던 시골에 도시의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적막감이 흘렀던 마을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애들은 말했다. “할머니는 왜 이렇게 작아졌냐고” 쑥쑥 커가는 손자들을 보면서 허허 웃고만 계시는 엄마, 당신은 지금도 허리 굽혀 들녘에서 땀 흘려 땅을 일구고 있다. 돌아보는 사이 엄마는 무엇인가 주섬주섬 싸고 있었다. 어느새 트렁크 안에는 농산물들로 가득했다. 오는 길 역시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트렁크에 실린 먹을거리들로 달구지는 언덕길을 힘들게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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