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길은 험난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첫 관문인 서부간선도로를 막 진입하자마자 거북이 거름이었다. 가다서기를 반복하다보니 이동한 거리는 짧은데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내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고향을 가곤 했는데 이렇게 까지 꼼짝을 안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서울 톨게이트까지 접근하여 빠져나가는 데만 근 다섯 시간을 허비했다. 뒤에 탄 애들은 영문도 모르고 화를 내며 “도대체 왜 차가 앞으로 안가는 거야” 하며 연신 허공을 향하여 투덜댔다. 그렇게 거북이 거름을 한끝에 고흥에 도착하고 보니 길바닥에서 보낸 시간이 열 두 시간이나 되었다.
반가운 가족들을 만나고 나니 귀성길 피곤했던 것은 온데간데없고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애들 역시 생기가 돌아 여기저기 날뛰기 시작했다. 고향의 산과 들은 피로를 풀어주는 뜨거운 기운이 있는가 보다. 그날 저녁 하루 전에 도착한 가족 분들의 노고로 차려진 음식은 진수성찬이었다. 평소 보지 못했던 해물 및 육 고기를 비롯하여 각종 부침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덕분에 곁들인 소주로 인하여 취기가 올라 기분이 삼삼해지고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말문이 열리더니만 그동안 즐거웠던 일, 힘든 일,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보따리 중에서 가장 귀전에 와 닫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처남이 애인이 생겼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송산에 산다고 했다. 명절 때 한두 번 만나는 사이라고 했지만. 말하는 톤과 눈빛을 보니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족들의 유도신문에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 어떤 선녀인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한번 보고 싶다는 가족들의 이구동성에 처남은 송산으로 달려갔다.
점점 어둠의 시간이 흐르면서 밤은 깊어만 갔다. 잠시 후 대문 앞에서 차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더니만 식당출입문의 방충망이 열리는 순간, 그곳에서 우뚝 솟아난 선남선녀는 귀공자와 공주였다. “안녕하세요” 라고 첫인사를 하는 선녀의 미모는 아름답기가 보석이었다. 팔등신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녀의 빛깔은 방안의 가족들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크게 웃지 않으면서 입가에 머금고 있는 미소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으면서 터지지 않는 애교에 평소 웃음이 적으신 아버님께서도 미간이 흔들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선남선녀와 가족들 은 초면이었지만 오가는 대화는 화기애애했다. 간간히 함박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점점 밤은 깊어가고 시계바늘은 열두시를 지나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즐거운 분위기에 취했는지 반대하는 가족은 한명도 없었다.
포두면소재지 노래방은 이미 문 닫고 영업하는 곳이 없었다. 고흥으로 내달렸다. 우리가족과 선남선녀는 고흥에서 시설이 제일 좋기로 소문난 ○○노래방에서 아주 멋진 노래를 불렀다. 이윽고 선녀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기 시작 했다. 첫마디가 나오고 두 마디가 나왔을 때 우리가족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래실력이 완전 프로였다는 것이다. 고음에서 찢어질 듯 우렁차게 내뿜는 소리와 넘어질 듯 말듯 흔들리는 몸짓은 우리가족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아 버렸다. 뛰어난 미모와 옥구슬 같은 목소리 너무나 밝은 성격,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 그 자체였다.
추석날의 하루는 이렇게 해서 마무리되고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의 즐거움 덕택인지 모르지만 피로가 싹 가시고 몸이 가뿐했다. 일찍 일어난 가족들은 즐거웠던 어제의 이야기를 하면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새벽동이 틀 무렵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석 같은 그 선녀에게 너무나 큰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가족은 큰 충격에 빠져버렸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착하고 성격 좋은 그 선녀에게 어렵고 힘든 삶의 멍에를 씌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사실로 인하여 온 가족은 혼돈에 혼돈을 거듭하면서 집안가득 냉기류가 흘렀다. 잠시 즐거웠던 어제 밤의 일들이 하루아침에 고민의 긴 터널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여기저기 아는 사람을 동원하여 알아낸 정보는 더욱더 고민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일을 어쩌나 점점 희망의 빛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음날 서울로 상경하는 길 막힘없이 달렸지만 우리가족은 어딘가 모르게 우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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