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다시 동여맨 인연의 끈

말까시 2007. 3. 18. 23:31

 

 

  

  새벽 여섯시 자동 켜짐으로 설정해 놓은 텔레비전에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함과 동시에 영국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박지성선수가 시즌 삼사호 골을 넣었다는 뉴스앵커소리에 벌떡 잃어났다. 일요일 뉴스라 길지는 않았지만 즐거운 소식들로 아침 뉴스를 장식했다. 날씨 또한 전형적인 봄 날씨로 나들이하기에 최적이라고 했다. 날씨를 전하는 앵커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봄 날씨만큼이나 화사했다.

  창가에 비치는 밖의 풍경이 하늘에서 내리 쬐는 태양의 열기에 의해서 아침인데도 포근 하게 느껴졌다. 아침밥을 먹고 잠시 바보상자 앞에서 한곳을 향해 주시했지만 자꾸만 높이 올라오는 빛의 향연에 좀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가자, 밖으로 나가보자, 혼자 가기는 그렇고 해서 아내에게 가까운 산에나 가자고 제의 했다. 그러나 할일이 많다고 거절하는 아내에게 멋진 곳에서 한턱 쏘겠다는 나의 제의에 혼 쾌히 승낙했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과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 있는 물병을 챙겨서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안에서 볼 때와는 달리 밖의 공기는 아직은 차가왔다. 가는 길 슈퍼에 들려 요기 거리로 컵라면을 샀다. 아내는 “소주는 안사냐”고 했다. “산에 가서 막걸리나 한잔 하지 뭐” 하고 소주 사는 것을 거절했다. 아내는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애주가인 내가 소주를 챙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평소 술 많이 퍼마신다고 아우성인 아내의 핀잔에 주눅이 든 난, 집에서 나오기 전에  먹다 남은 소주를 조그만 물병에 담아 이미 배낭 속에 숨겨놓았었다. 물처럼 마시면 뽀뽀를 하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 근교산중에서 아주 작은 산이라 할까. 바위로 둘러싸인 불암산으로 가기로 했다. 불암산을 오르는 길은 아주 많았다. 사람들이 적은 길을 택하기로 하고 남서쪽 마을 뒷산의 오솔길을 택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나 갔을까. 차갑게 느껴졌던 공기가 뜨거워지면서 온몸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르는 사람들 또한 가파른 등산로에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정신이 없었다. 봄 햇살이 따스해서 인지 산골짜기 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일년 내내 안녕을 비는 산신제를 알리는 현수막도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겨우내 얼었던 땅속의 얼음덩어리들이 봄기운에 녹았는지 바위 틈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정겹게 들려왔다.

  굵은 땀방울을 한바가지나 흘린 끝에 정상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정상에는 이미 도착한 많은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한쪽 구석에 쳐져 있는 천막 안에서는 막걸리 먹는 소리로 요란했다. 아내와 난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마늘종지와 멸치대가리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막걸리를 번갈이 나누어 마시었다. 땀을 흘리고 난 후의 갈증에 넘어가는 막걸리는 그 어느 청량음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빈속을 타고 내려가는 막걸리의 시원함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하자 그 상쾌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시원함에 상쾌했던 기분은 알코올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마나님 보다 옆에 있는 펑퍼짐한 아줌마가 더 이쁘게 보였다. 눈동자가 자꾸 옆으로 돌아가는 것을 눈치 챈 아내는 나를 밖으로 끓어냈다. 꼬집어 비틀어버리는 벌을 받고나서야 일단락되었다.  

  다음 봉우리 밑에서 아내와 난 보온병에 담아져 있는 뜨거운 물로 컵라면을 아주 맛깔스럽게 먹었다. 얼큰한 라면 국물에 물통에 숨겨간 소주를 꺼내어 한 모금 마시고 나니 그 맛을 어찌 표현하랴. 그냥 속된 말로 “죽여준다.”라고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아주 멋진 산에서 아주 작은 돈을 투자하여 맑고 깨끗한 봄날, 저 하늘 너머에서 올라오는 봄의 기운을 흠뻑  마시고 왔다.

  집에 오는 길에 애들에게 미안감이 들어서 통닭 한 마리를 주문하고 왔다. 샤워를 하고 나자마자 주문했던 통닭이 도착 되었다. 우리가족 모두는 양념통닭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텔레비전에서는 한물 간줄 알았던 이봉주가 동아마라톤에서 우승했다고 아주 긴 시간을 할애하여 뉴스를 전했다. 아침에는 박지성 선수의 골 장면에 기분이 업 되었는데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에는 이봉주의 마라톤 골인 장면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었다. 오늘 하루는 아주 멋진 하루였으며 막걸리 한잔에 아내와 난 잠시 잊었던 소중한 인연의 끈을 다시 동여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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